신은진 산업1부 기자

'세계 1위 조선(造船) 기업' 현대중공업은 요즘 '바람 앞의 등불' 신세다. 올 상반기에만 1972년 창사 이래 가장 많은 1조2926억원의 영업 손실을 낸 데다 2010년 15.0%에 달하던 영업이익률이 지난해 1.5%로 급락하는 등 회사 전체가 휘청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은퇴한 최길선 전 사장을 회장으로 영입하고 권오갑 현대오일뱅크 사장을 새 최고경영자로 투입하는 강수(强手)를 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예산 삭감, 인력 조정 같은 구조조정이 예고되고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정작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거꾸로 가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17일 울산 본사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참석 대의원 155명이 파업을 결의하고 23~26일 조합원 1만8000여명을 대상으로 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키로 한 것이다. 노조원 재적 과반수의 찬성으로 파업이 이뤄지면 이 회사의 '19년 연속 무파업(無罷業)' 기록은 깨지게 된다.

노사관계의 모범 사례로 꼽혔던 현대중공업 노조의 입장 표변은 "같은 울산에 있으면서 잦은 파업을 통해 고임금 직장이 된 현대자동차보다 임금과 대우가 열악하다"는 비교의식이 작용했다는 관측이 많다. 통상임금 확대, 임금 13만2013원(기본급 대비 6.5%) 인상, 성과급 250% 추가, 호봉승급분 2만3000원에서 5만원으로 인상…. 노조가 이런 50여개 사안에 대해 12년 만에 최고 수준의 임금 인상 요구안(案)을 낸 게 이를 보여준다. 회사 측은 정기상여금 800% 중 700%를 통상임금에 포함해 호봉승급분(2만3000원)과 함께 기본급 3만7000원 인상, 생산성 향상 격려금 300만원, 경영목표 격려금 200만원 등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이 정도면 어려운 경영환경에서 최대한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라는 회사 측 주장에 대해 노조 측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파업 결행을 벼르고 있다.

재계에선 노조가 끝까지 요구 관철에 나선다면 '파국'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현대중공업의 올해 수주목표액(295억달러) 달성률은 6월 말 기준 38%에 불과하다. 노조가 파업을 할 경우 19년 무분규를 바탕으로 쌓은 고객 신뢰가 물거품이 돼 수주 면에서 추가 악화가 불을 보듯 뻔하고 조업 중단으로 매일 1030억원 정도씩 매출 손실도 난다. 회사 측 관계자는 "바이어들에게 노조 파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15일 마감한 신입사원 채용에는 700명 모집에 2만명 넘게 몰려 평균경쟁률이 30대1에 달했다. 노조가 보기엔 문제투성이 기업이지만 청년들이 앞다퉈 찾는 인기 직장이라는 증거다. 실제 현대중공업 직원 1인당 평균 급여는 7232만원이고, 평균 근속연수(18년)는 SK텔레콤(12.4년), 삼성전자(9.3년)보다 훨씬 길다. 그만큼 안정된 고(高)임금 일터다. 이렇게 좋은 근로여건인데도 파업을 불사하려는 현대중공업 노조원들을 일자리에 목마른 청년들은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