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방경찰청 페이스북

“어서 무라(어서 먹으라)”

옥모(68) 할머니가 바리바리 싸온 보따리를 풀자, 딸은 펑펑 울었다. 보따리엔 다 식어버린 미역국과 나물 반찬, 흰 밥이 들어 있었다. 딸은 이틀 전 출산을 하고 6인실 병실에 입원해 있었다. 할머니를 바라보던 간호사와 환자들도 함께 눈물을 훔쳤다.

부산 서구 아미파출소에 신고가 들어온 건 15일 오후 2시쯤이었다. '할머니 한 분이 보따리 두 개를 들고 한 시간째 동네를 왔다갔다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경찰의 대답에 아무것도 답하지 못했다. 딸의 이름도, 자신의 이름도 할머니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한 마디만 반복하며 계속 울었다. "우리 딸이 애를 낳고 병원에 있어요…"

할머니의 행색은 초라했다. 경찰은 할머니가 슬리퍼를 신고 있는 것에 주목, 동네를 수소문했다. 할머니의 사진을 찍어 은행, 교통계 등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할머니를 안다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신고가 들어온지 6시간 만인 오후 8시쯤에야 경찰은 한 아파트에서 할머니의 이웃이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경찰은 순찰차에 할머니를 태워, 딸이 입원해 있다는 부산진구의 한 병원으로 모셨다. 딸은 갓난아기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었고, 다행히 할머니는 딸의 얼굴을 잊지 않았다.

부산지방경찰청은 이 사연을 지난 17일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치매를 앓는 엄마가 놓지 않았던 기억 하나'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이 글엔 1만5000명 이상의 네티즌이 '좋아요'를 누르며 감동을 표했다.

아미파출소 관계자는 "할머니가 음식을 전하는 순간 우리도 만감이 교차했다"라며 "할머니는 아파트에 혼자 사셨다. 할머니가 치매에 걸린 사실을 미리 알고 돌봐왔다면 더 빨리 딸을 찾아줬을텐데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