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전 일본 정부가 직접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청취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처음 공개됐다. 최근 일본 정부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사죄한 '고노담화'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에 반발해 피해자 관련 단체가 공개에 나선 것이다.
사단법인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는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노담화가 발표되기 직전인 1993년 7월 말 일본 정부 조사단이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 16명의 증언을 직접 듣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했다. 고노담화의 근거가 된 것으로 보이는 이 동영상은 21년간 일본 정부의 요청으로 공개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날 공개된 16분 59초짜리 동영상은 1993년 7월 26일부터 닷새간 당시 일본 총리부 소속 심의관 2명, 인권위원, 통역 등 일본정부 관계자 5명이 서울 용산구에 있던 유족회 사무실에서 윤순만(83) 할머니와 고(故) 김복선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나 증언을 청취하는 모습 중 일부가 담겨 있다. 일본정부에 피해 사실 등을 증언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16명 중 현재 2명만이 생존해있다.
동영상에서 윤 할머니는 "무서워서 울면서 도망을 가려고 했는데 결국 부산으로 끌려갔다"며 "시모노세키를 거쳐 오사카로 넘겨졌는데, 오사카 깊은 산골로 들어가니 종군위안부 기숙사가 있었다"고 13세 당시 충북 영동에서 오사카로 가게 된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윤 할머니는 "지하부대, 가스부대(소속군인)가 많이 왔다. 말을 안 듣는다고 매도 많이 맞았다. 팔을 비틀어서 아직도… (상흔이 남았다)"라고 말하며 꺾여 있는 왼쪽 팔꿈치를 들어 보이기도 했다.
2012년 세상을 떠난 김 할머니는 증언에서 "18살 때 큰아버지로부터 처녀들이 끌려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2~3주 동안 다락방에 숨어지냈다"며 "하지만 밥을 먹으러 내려왔는데, 갑자기 일본 순경이 나타나 옆에서 팔을 붙들고 나를 끌고 갔다"고 말했다.
이날 공개된 영상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유족회는 당시 증언에 나섰던 길갑순 할머니의 진술도 공개했다. 당시 길 할머니는 "(일본군과의) 잠자리를 거부하다 뜨겁게 달궈진 인두로 등을 지지는 고문을 받았다"고 증언했다고 유족회 관계자는 전했다. 길 할머니는 증언 5년 뒤인 1998년 작고했다.
양순임 유족회 회장은 "최근 아베 정부가 고노 담화는 증거가 없는 한·일 정부의 정치적 입장으로 발표된 것이라고 진실을 왜곡해 영상을 공개하게 됐다"며 "유족회는 증언청취 과정 등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증거들을 묶어 백서로 발간하고 유엔에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족회는 이날 공개된 영상 외 다른 증언 영상은 일본 정부의 반응에 따라 공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