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2만5000명을 거느린 미국 유통업체 최고경영자(CEO)가 어느 날 이사회에서 해임됐다. 회사 이익을 더 낼 수 있는데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최대 주주의 불만을 받아들인 조치였다. 그런데 해임 사실이 알려지자 직원들이 CEO 복직을 요구하며 무기한 시위에 돌입했다. 주주들은 시위가 며칠이면 끝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 회사는 노조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시위 가담자는 갈수록 늘었다. 게다가 고객들이 종업원들 시위에 동참해 불매운동까지 벌였다. 매출 급감으로 적자가 쌓이자 최대 주주 측은 6주 만에 해고한 CEO를 복직시켰다.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 이야기는 지난 7~8월 두 달간 매사추세츠주의 수퍼마켓 체인 '마켓바스켓'에서 실제 벌어진 사건이다. 이 회사 CEO인 아서 T 디물러스는 창업자의 손자로, 육십 평생을 바쳐 구멍가게였던 회사를 매장 70개를 가진 중견 체인으로 키웠다. 그의 경영 철학은 세 가지였다. 경쟁 업체보다 싼 가격, 경쟁 업체보다 높은 임금, 기여도가 높은 직원에 대한 공정한 보상과 승진이다. 말단 직원으로 입사해 열심히 일하면 임원까지 승진할 수 있는 게 이 회사 전통이다. 승진과 보상이라는 당근은 직원들로 하여금 주인 의식을 갖고 열심히 일하게 만들었다. 이직률도 경쟁 업체보다 낮았다.
하지만 그의 지분율이 절반에 모자라는 49.5%였던 게 문제였다. 나머지 50.5%를 가진 사촌 형제들이 반란을 일으켜 하루아침에 CEO 자리에서 쫓아낸 것이다.
사촌들을 꼬드긴 것은 '서버러스'라는 헤지펀드였다. 이 펀드는 경영에 무관심했던 사촌 형제들에게 "CEO를 쫓아내면 회사를 비싼 값에 사주겠다"고 제안했다. 회사를 인수한 후 인건비를 줄이고 이익을 늘려 더 비싼 값에 되파는 전형적 인수·합병(M&A) 전략을 쓴 것이다. 하지만 종업원과 고객의 연대 투쟁이라는 미국 기업 역사상 초유의 상황이 발생하면서 헤지펀드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마켓바스켓 사건은 버거킹이나 월그린(미국 최대 약국 체인) 등 미국 유수 기업들이 세금 절감을 위해 본사를 해외로 옮기려는 움직임과 맞물려 헤지펀드의 폐해를 고발하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본사 이전을 요구하는 주주가 대부분 헤지펀드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국적 포기에 대해 초기 미국 여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법인세율을 낮추자는 쪽으로 흘렀다. 하지만 진짜 본사를 옮기는 게 아니라 서류상 본사 소재지만 옮긴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여론은 반전되고 있다. 줄어드는 정부의 세수가 고스란히 미국 국민의 부담으로 떠넘겨지기 때문이다.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처럼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헤지펀드는 미국식 주주자본주의 모델에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헤지펀드는 주주로서 근시안적 이익만 챙기고 기업의 장기적 성장이나 발전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클린턴 정부에서 노동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UC버클리 교수는 "종업원과 고객, 국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포기하면 주주들의 이익이 증대된다는 헤지펀드의 논리는 자본주의의 건강한 발전을 가로막는 중대한 위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