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립의 ‘잡기노트’ <456>
“왜란 한참 뒤인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순사 출신인 사와무라 하치만다로는 명량대첩의 일등공신으로 ‘어란’을 지목한다. 난중일기와 실록이 ‘이름 모를 어떤 이’, ‘김해 사람’, ‘여인’으로 표기한 인물이 바로 어란이라는 것이다. 관기인 어란이 적장의 기밀을 빼내 조선 수군에게 넘겼다고 주장한다. 왜장 스가 마사가게가 누설한 군사 기밀, 즉 왜군의 출발일시를 어란이 이순신 측에게 전달했고, 덕분에 조선군은 대승할 수 있었다고 강변한다. 천하의 이순신이 기생의 도움을 받았다니, 다행히 야사다. 정사는 임중형, 임준영 등 이순신의 탐망·척후 군관의 이름을 명기하고 있다.”
지난달 7일 의 일부다. 일본에서도 읽힌 기사다. 좀 더 구체적인 기록도 있다.
“김중걸이 이달 초6일 달마산(전남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으로 도망갔다가 왜놈에게 붙잡혀 결박당해 왜선에 실렸더니, 김해 사람으로 이름 모를 어떤 이가 왜장에게 빌어 묶인 것을 풀어줬다. 그날 밤 김해 사람이 김중걸의 귀에 대고 ‘조선 해군 10여척이 왜군을 추격해 사살하고 불태웠으므로 불가불 보복을 해야겠다, 그리하여 여러 배들을 모아 조선 해군을 몰살한 후에 바로 경강으로 올라가겠다고 왜놈들이 말하더라’는 것이다.” 정유년(1597) 명량대첩 이틀 전인 9월14일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다. “이덕열이 아뢰기를 ‘이순신이 원균의 공을 빼앗아 권준의 공으로 삼으면서 원균과 상의하지도 않고 먼저 장계한 것입니다. 그때 왜선 안에서 여인을 얻어 사실을 탐지하고는 곧장 장계했다고 합니다.” 같은해인 선조 30년 ‘조선왕조실록’ 1월27일자의 내용이다.
사와무라 하치만다로의 유고집을 연구한 박승룡(87)옹에 따르면, 사와무라는 명량해전의 일등공신으로 ‘어란’을 지목했다. 왜장 스가 마사가게가 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에서 9월16일 전사하자 인근 벽파진의 절벽에서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여인이다.
어란이 산발한 채 명량해협이 바라보이는 바다에 투신한 다음날 어부가 어란의 시체를 수습해 소나무 밑에 묻었다. 주민들은 그 영을 위로하기 위해 석등롱을 세워 매일 밤 점화했다는 것이 ‘어란의 전설’이다.
박옹은 “어란의 정보를 바탕으로 이순신은 바다에 대나무 새끼 2본을 깔았다. 이어 배 2, 3척으로 왜군의 선도선 수척을 유도한 다음 후방 연안에 숨겨둔 작은 배 수척에 지초(芝草)를 가득 싣고 왜군 함대의 뒤를 따르게 했다. 왜군은 명량해의 격류를 탔지만 대나무 새끼에 발목을 잡혔다. 우왕좌왕하는 왜군을 불을 붙인 지초선들이 덮쳤고, 적군은 섬멸됐다. 이순신의 배 13척, 왜군의 배는 133척이었다”고 설명한다. (이 작전의 실재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어란보존현창회장인 박옹은 어란이 몸을 던진 낭떠러지인 여낭터에 지난해 초 표지비와 함께 어란상을 세웠다. 박옹은 “ 독자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어란상을 조각한 조각가는 감격했다. 독립운동가나 애국지사를 발굴하고 선양하는 화서학회의 원로 이종립옹은 임진정유왜란 때 나라를 구한 삼대 기녀는 평양의 계월향, 진주의 논개, 호남의 어란이라면서 해남 어란 마을을 찾아와 어란이 투신했다는 여낭터를 답사했다. 연꽃 모양의 암석으로 조성된 동굴에 안치된 어란상을 보고 ‘이 자리는 한국의 명당 중의 명당이요, 이러한 명당에는 아무나 묻히는 것이 아니며, 신이 하사한 명당의 극치’라고 평했다. 또 ‘일대의 수려한 경관은 생전 처음 보는 명승’이라고 감탄했다”고 전했다.
다만 “전국 각처에서 사람들이 여낭터를 찾아오건만 이 곳으로 통하는 산길이 산양의 창자처럼 꼬불꼬불하고 험해 대부분 답사를 포기하고 돌아서니 안타깝다. 드라마틱한 역사의 변이자원인 어란을 해남의 관광자원화하는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며 답답해했다.
이유는 어쩌면 간단하다. 천하무적 이순신 군신(軍神)이 ‘기생 스파이’의 도움으로 명량대첩을 일궈냈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국민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아울러 어란상 건립비용을 일제강점기 해남 태생인 일본의 고니시 유이치로(72) 형제가 댔다는 것이 못마땅한 이들도 없지 않다. 이들의 부친은 송지면 어란리 심상소학교 교장을 지냈고, 외조부는 어란리 최초의 김 양식자다. 형제는 “한·일 간의 사실(史實)을 놓고 심혈를 경주하는 데에 대한 축의금으로 제공한 것이지, 희사금은 결코 아니다”며 어란을 매개로 양국이 화해하기를 바랄 따름이다.
온라인편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