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모어 아트’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들이 근대시대 복장을 하고 연기하는 배우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다.

마네킹이 있을 법한 자리에 배우가 대신 서는 전시가 늘고 있다. 살아 있는 마네킹, 연기하는 마네킹의 등장이다. 연기하는 마네킹은 말과 행동으로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지난 3일 서울 성동구의 갤러리아 포레 지하에 있는 더 페이지 갤러리의 '노 모어 아트'전. '나혜석, 나를 찾은 방'이라고 쓴 작은 방 문턱에 20대 여성이 마네킹처럼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관람객이 다가가자 그 여성은 갑자기 "나는 나혜석이외다"라고 입을 뗐다. 관람객들은 "어머, 마네킹이야? 사람이야?" 하며 놀랐다. 그러자 그 여성은 일어서서 나혜석의 이혼 체험에 관한 글을 외우기 시작했다.

시인 이상이 운영하던 '제비 다방'을 재현해놓은 곳에서는 이상 역할을 맡은 배우가 시를 쓰고 있었다. 이상이 살던 시대 복장을 한 종업원들이 "커피 마시고 가세요" 하며 "이 다방은 김유정, 박태원, 구본웅 같은 예술가들의 사랑방이기도 했다"고 알려주었다. 구두닦이는 "따~끄"라고 외치며 구두통을 들고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이들은 대학 연극영화과나 뮤지컬학과 학생이나 극단 배우다.

전시회를 찾은 윤경선(55)씨는 "작품이나 마네킹을 구경하면서 글로 된 설명을 읽는 미술 전시회가 아니라 시대상을 구현한 배우와 관객이 이야기를 나누는 발상이 신선하다"고 했다. 이번 전시의 프로듀서 정상일(60)씨는 "관람객이 구경하고 도슨트(전시 해설사) 설명만 듣는 전시가 아니라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배우들을 배치했다"며 "큰 목소리나 과장된 연기가 돋보여 작품이 죽지 않도록 연기 수위를 조절한다"고 했다.

한국민속촌도 지난 4~6월 조선 문화 축제 '웰컴 투 조선' 행사에 '움직이는 마네킹'을 투입했다. 과거엔 행사장 곳곳에 전통 복장을 한 마네킹을 세웠다. 하지만 이번 축제에선 오디션을 열어 거지, 기생, 광녀(狂女), 사또, 약장수 등 다양한 캐릭터 20여명을 선발해 현장에 세웠다.

거지 역에 뽑힌 민정대(30)씨는 엑스트라 연기 전문 배우. 민씨는 "철퍼덕 누워 있으면 사람들이 마치 진짜 거지를 만난 것처럼 먹던 빵을 주거나 말을 걸기도 한다"며 "예전에 민속촌을 와봤던 어르신들이 '마네킹보다 생동감 있고 재미있다'며 즐거워한다"고 했다. 한국민속촌은 요즘도 주말이면 조선시대 거지, 무사, 사또, 광녀 역할 배우가 연기하게 한다. 한국민속촌 마케팅팀 권세라 주임은 "조선시대 풍습을 재미있게 보여주는 '연기파 마네킹' 배우들이 배치되고 나서 입장객이 20% 늘었다"며 "무엇보다 10대, 20대가 재미있어한다"고 했다.

경기 연천군 구석기 유적관에서 매년 열리는 '구석기 축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는 원시인 족장 정찬교(53)씨다. 정씨는 지금은 멸종된 호모 에렉투스를 연기한다. 언어가 발달하지 않은 시대의 원시인 역할이라 "우가우가" 정도의 표현만 한다. 이 축제에도 살아있는 마네킹이 10여명 등장한다. 정씨는 "전시장은 관람객 반응에 따라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우리 무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