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할지 검인정으로 할지의 논란은 국사 교육을 둘러싼 오랜 갈등이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국사 관련 학회들과 사회 원로들이 잇달아 발표한 국정화 찬반 성명은 이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국사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쪽을 지지하는지와 상관없이 이번 논란이 제기한 근본 문제들을 고민해볼 시점이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질문은 국사 교육의 주체(主體)가 누구냐는 것이다. 국사 관련 학회들은 국사학자와 국사 교사들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사회 원로들은 반(反)대한민국 교과서가 국사 교육을 독점하는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정부가 올바른 국사 교육을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사학자와 국사 교사들이 국사 교육의 실무자인 것은 맞다. 하지만 다음 세대에게 공동체의 집단 기억을 전수하는 궁극적 책임은 국가와 사회에 있다. 따라서 역사적 정통성을 다투는 적대적 체제와 장기 대치하고 있는 우리 현실을 감안하면 학생들에게 정신적·이념적 혼란을 안겨주는 국사 교과서들을 방치할 수 없으며 정부가 교과서를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적 설득력을 갖는다.
이와 관련한 다음 질문은 '국정(國定)'이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것이다. 국사 관련 학회들은 "정권마다 다르게 상정할 수 있는 국론에 입각해서 국정 교과서를 만드는 것은 국론 분열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사회 원로들은 우리나라의 기반인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입각한 국정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정 교과서는 특정 정권이 아니라 국가가 만드는 것이다. 정권의 성격에 따라 편차는 있을 수 있지만 헌법과 국체(國體)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 일부에서는 국정 교과서로 하면 좌파 정권이 들어섰을 때 큰일 나지 않겠느냐고 우려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도 국가가 교과서를 책임지게 되면 사회적 합의의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국정 교과서 편찬은 정권이나 정파적 관점을 넘어서는 표준적 국사 인식을 만드는 과정이 될 수 있다.
국사 관련 학회들은 국정 교과서가 국사 교육의 획일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난해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소동은 이런 논리의 허구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기존 교과서들과 사관(史觀)이 다른 교과서의 보급을 저지하기 위해 온갖 수단들이 동원되는 행태는 현행 검인정 체제 아래서도 국사 교육의 다양성이 확보되기 어려운 현실을 일깨워주었다.
국사 교육을 둘러싼 갈등은 우리 사회의 보편적 국사 인식과 국사 교육 현장을 장악하고 있는 일부 국사학자·국사 교사들의 국사 인식 사이에 건너기 어려운 심연(深淵)이 존재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 문제를 푸는 방법은 국사 교육의 문호를 과감히 개방하는 것이다. 한국사, 특히 논란의 초점인 근현대사의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가 국사학이 아니라 국문학이나 사회과학 쪽에서 나오기 시작한 지는 오래됐다. 또 세계사적 시야에서 한국사의 발전 과정을 분석하는 수준 높은 저술이 해외 학계에서 쏟아지고 있다. 이런 학문적 성과들이 국사 교육에 반영되려면 국사 교육 논의를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일부 국사학자와 국사 교사들이 독점하는 구조부터 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