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의 러시아 경제 제재안이 별다른 효과가 없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와 미국은 이날 러시아 무장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침공했다고 밝혔다. 일부 전문가들은 가스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서는 서방국들이 효과 있는 제재안을 내놓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사진은 최근 가치가 급락한 러시아 루블화.

올 3월 이후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러시아 제재안 만들기에 골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침공을 시작으로 옛 동구권을 다시 장악하려는 러시아의 야욕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서방의 갖가지 제재안에도 러시아는 눈 하나 까딱 않는 모습이다. AP는 28일(현지시각) 러시아 무장 탱크와 장갑차 여러 대가 우크라이나 동남부지역으로 진격했다고 보도했다.

당장 미국을 포함한 서방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추가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영국과 독일 등은 이번 주 러시아에 대한 새로운 제재를 논의할 계획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서방국의 러시아 제재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간의 제재 활동의 효과도 미미했고 앞으로 나올 제재안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나온 제재안의 효과가 있었다면 러시아의 태도가 진작에 바뀌었을 거라고 지적한다.

◆ 친러 반군 대규모 반격 성공

AP는 이날 친러군이 우크라이나 항구도시 마리우폴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리우폴은 우크라이나 지형을 놓고 볼 때 전략적 요충지로 꼽히는 곳이다.

이 소식에 우크라이나의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은 터키 순방 일정을 취소하고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동시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고 국제사회에 공식 발표했다. 이날 포로셴코 대통령은 “최근 정부군이 반군을 성공적으로 진압하자 러시아가 다시 반군 활동에 개입·지원하기 시작했다”며 “러시아 정규군 부대를 비롯한 각종 무기가 국경을 넘어왔다”고 말했다.

물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보낸 바 없다고 발뺌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고 확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는 더 큰 비용과 제재를 받게 될 것”이라며 추가 제재안을 시사했다.

외신들은 러시아가 정치적 리스크(위험)를 무릅쓰고 반군 세력에 지원을 나선 것에 대해 “동부 지역 반군의 세력이 최근 두 달 새 눈에 띄게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AP는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가까스로 동부 지역 반군 세력을 무너트렸는데 이번에 러시아 지원을 받아 다시 한번 세력을 재건했다”며 “양측간의 갈등이 장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뜻”이라고 보도했다.

◆ 허울뿐인 제재안…러 경제에 1% 영향 주는 정도

우크라이나에 무장 러시아 군대가 진격했다는 소식에 외신들은 그간의 제재안이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는 뜻이라는 분석기사를 내고 있다. 이날 블룸버그는 전문가들의 발언을 인용, 지금까지의 제재안은 허울뿐이라고 지적했다.

피터슨경제학연구소(PIIE)의 개리 허브파이어 연구원은 “러시아의 야욕을 꺾을 최적의 제재안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과 미국이 러시아를 견제할 방안을 수년째 고민하고 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며 “러시아 제재는 기본적으로 매우 강력해야 하는데, 이런 강력한 제재안은 유럽과 미국이 내세울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국방부의 고위관료도 “지금까지의 제재안은 모두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앞으로 나오는 제재안은 러시아 경제를 광범위하고 아주 집중적으로 옥죄는 방안을 내놔야 한다”며 “그러려면 유럽 경제의 일정 부분 타격은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금까지 나온 서방의 제재안은 러시아 경제에 직접적으로 1% 정도 타격을 줄 뿐이다. 허브파이어 연구원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책을 바꿀만한 충분한 압박 수단이 되지 않는다”며 “러시아 경제인들이 푸틴 대통령에게 ‘이러다 사업(경제) 망하겠다’고 하소연할 정도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UN경제사회국의 블라디미르 포포브 고문도 “지금까지의 제재는 러시아 경제에 10억달러 정도의 영향만 줄 뿐이고, 만약 러시아가 맞불작전을 놓는다면 유럽은 10배에 달하는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제재안의 핵심인 가스 문제, 건드릴 국가 없다”

몇 단계에 걸쳐 확대된 서방의 러시아 제재안이 사실상 미약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지만, 문제는 제재안을 더 심화시키기도 어렵다는 데 있다. 전문가들은 제재안의 핵심은 가스 문제인데 이걸 건드릴 수 있는 국가가 없다고 지적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제재안이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출길을 완벽히 차단하는 것이라고 꼽았다. 여기에 러시아를 국제금융시장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면 금상첨화라는 조언이 많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는 국제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제재안은 여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유럽과 미국은 자국 내 자본 시장에서 러시아 기업이 자본 조달을 하지 못하도록 밝혔지만, 이는 사실상 원천봉쇄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조금 방법이 복잡해지고 귀찮아졌을 뿐 우회로를 택하면 충분히 자금조달이 가능하다. 또 일부 러시아 정치인과 기업인들의 미국과 유럽 내 예치금이 동결되고 비자 발급이 정지됐다고 해도 진짜 알짜 기업들은 제재안을 비켜갔다는 분석이 많다. 러시아 가스회사인 가즈프롬은 제재 대상에 오르지 않았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사실상 유럽은 러시아의 가스를 끊어내자는 강력한 제재안을 내놓을 수 없는 상태다. 미국이 이를 주장한다고 해도 기를 쓰고 말려야 할 판이다. 러시아에 대한 연료 의존도가 워낙 높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독일의 소비 천연가스 40%가 러시아에서 들어온 것이라고 밝혔다. 이탈리아의 대(對)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도 25%다.

러시아산 가스를 끊으면 유럽의 에너지 조달비가 2배 이상 오를 것이라는 점도 문제다. 최근 유럽연합은 경제 회생을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에너지 조달비가 늘 경우 가계 소득이 지금보다 더 쪼들리게 될 뿐 아니라, 공장 가동 등에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안 그래도 높은 실업률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