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8일 경기도 고양시 육군 30기계화보병사단에서 장병들이 오전에 받은 인권교육에 대해 토의하고 있다.

1993년부터 2013년까지 21년간 우리 군(軍)에서 발생한 사망자 수는 총 4108명으로 한 해 평균 195.6명이 군대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의 경우 117명이 군생활 도중 자살 등의 각종 사고(총기, 폭행, 폭발, 차량·함정 사고 등)로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수치에는 개인질병, 민간인에 의한 피살, 전사(戰死) 등으로 사망한 장병은 포함돼 있지 않다. 예컨대 2010년 4월 발생한 천안함 피격 사건의 사망 및 실종자 46명은 제외돼 있다. 특히 최근 발생하는 군내 사망자의 약 70%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통해 목숨을 잃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방부가 통계청 'e나라지표'를 통해 공개한 '1993~2013년 발생한 군 사망사고 현황' 자료를 주간조선이 분석한 결과다. e나라지표에 1993년 이전 자료는 공개돼 있지 않다. 국방부 대변인실은 이와 관련 주간조선과의 전화통화에서 "군 사망사고 자료 공개는 1993년부터 실시된 것으로 보이며, 자료 보관 기한이 5년 정도여서 현재로선 그 이전 자료를 취합하기 어렵다"고 했다.
  
1993년 이후 군에서 사망한 장병이 가장 많았던 시기는 1994년으로, 그해 군에 입대한 뒤 집으로 귀가하지 못한 장병은 총 416명이었다. 당시 자살로 숨진 장병은 총 155명으로 자료가 공개된 이래로 가장 많은 군내 자살자가 나왔다. 1994년에는 차량사고로 숨진 장병도 126명이나 됐고 사인을 기타로 분류한 사망자는 93명이었다.
  
2000년대 들어 연간 군 사망자 수는 100명대로 떨어졌다. 이때부터 노무현 정부 중반까지 사망 장병 수는 꾸준히 감소세를 보였다. 2005년 124명까지 줄었던 군내 사망자 수는 2006년과 2008년, 2011년에 소폭 증가하며 들쑥날쑥하는 추세를 보였다. 2006년에는 128명, 2008년에는 134명으로 사망자가 늘었다. 2011년에는 총 143명의 장병이 사망함에 따라 2003~2004년 수준으로 회귀하기도 있다. 지난해의 경우 사망 장병 수는 117명이며 차량(15건)·함정(21건)·화재(7건) 사고를 제외하면 대부분 자살(79)로 인한 사망으로 처리됐다.
  
국방부가 공개한 자료에는 이른바 '윤 일병 사망사건' 원인이었던 폭행 사고는 극히 적었다. 1994년 8건으로 가장 많았고 2000년대 들어서는 매년 1~2건에 불과했다. 폭행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해도 지난 21년간 7년이나 있었다.
  
전체 군 사망자 수가 크게 줄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자살률 증가에서 찾을 수 있다. 1990년대 초반의 경우 군 사망사고의 원인 중 자살이 차지하는 비중은 30~40% 수준에 불과했다. 예컨대 1995년에 발생한 군 사망자는 총 330명이었고 이 가운데 자살로 인한 사망자는 100명으로 전체의 30%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는 자살이 차지하는 사망자 비중이 크게 늘었다. 2010년 이후 2013년까지 연간 군 사망자 가운데 평균 66%가 자살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군내 자살자는 2000년대 들어서며 거의 수치에 변동이 없었으나 2010년 이후 소폭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1년 사망자는 66명이었으나 2011년에는 97명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반면 화재, 폭발, 추락, 익사, 차량 및 항공·함정 사고로 인한 사망 장병 수는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2013년 총 사망자 가운데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은 장병 수는 37명으로 나타나 전체의 30% 수준으로 떨어졌다. 1993년 안전사고로 인한 군 사망자 비율이 59%였던 때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훈련장비가 발달하고 장병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가 강화됨에 따라 안전사고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2000년대 들어 군내 자살률이 증가한 데는 군대문화가 사회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군대 부적응자가 양산된 탓이라는 분석이 많다. 특히 신세대 장병들이 군대라는 단절된 공간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2004년에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찬반 논란이 불거지며 징병제도 자체가 위협을 받기도 했다.
  
군생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일과 후 생활관(내무반) 활동 등에 있어서 과거 군대문화의 잔재인 이른바 '군기 잡기'가 남아 있어 신세대 장병들을 심리적으로 크게 압박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근 발생한 육군 28사단 소속 장병 2명의 동반자살 사건도 선임 장병들에 대한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군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관심사병으로 분류됐던 두 사병이 선임병에 대해 '죽이고 싶다' '힘들다'는 메모를 남긴 사실을 확인했다.
  
현역 시절 자율적 군대문화 만들기에 앞장섰던 강한석 전 육군 소장(새누리당 경기도당 부위원장)은 이에 대해 "신세대 청년들과 군대는 그 문화적 격차가 크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가 개인의 사생활을 억압하는 것인데, 일과가 끝나고 난 뒤의 내무반 생활은 적응이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군기는 내부반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훈련을 통해 만들어져야 한다. 과거식의 군기 문화가 자살이나 총기사고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방부는 "군내 자살사고 발생률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지적에 대해 일면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론 다른 시각도 제시한다. 일반 사회에서 발생하는 자살률에 비해 군내 자살사고 발생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 실제로 2011년 20대 남성의 10만명당 자살자는 28.2명인데 비해 동일 조건의 군내 자살자 수는 15.2명으로 나타났다. 2012년에는 인구 10만명당 20대 남성의 자살자 수가 23.5명으로, 동일 조건의 군내 자살자 수(11.1명)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고 한다.
  
또 우리 군의 자살률은 해외보다도 낮은 수준이라는 게 국방부의 해명이다. 국방부 병영정책과 우재현 중령은 "우리 군의 인구 10만명당 자살사고 사망자 수는 2012년 11명, 2013년 12명이었지만 미군의 경우 2012년에 24명, 2013년에 20명이다. 미군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최근 들어 군내 자살률이 소폭이지만 증가 추세인 것을 감안하면 국방부의 해명은 궁색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방부 대변인실의 한 관계자는 "군내 자살은 촉발요인이 워낙 다양해서 모두 통제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최근 관심사병을 식별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자살사고를 줄여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군 입대자들을 자살로 몰아가는 군대문화를 어떻게 하면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을까. 우선 일과 중 발생하는 안전사고보다 일과 이후 주로 발생하는 자살, 총기, 폭행 등 군기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무엇보다 생활관 문화를 '퇴근의 개념'으로 바꾸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훈련 등 업무가 끝나면 집으로 퇴근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일과 이후 병영문화를 바꿔야만 군기사고를 막을 수 있다. 다음 날 과업 준비를 마치고 나면 영내 활동에 제한을 없애도 된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말했다.
  
국방부 산하의 병영문화개선특별위원으로 활동 중인 신 대표는 "28사단처럼 소규모 부대의 경우 특히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고가 발생한 28사단은 시설이 열악하고 규모가 작은 부대라서 일과 후에 선임병과 후임병이 함께 생활하며 서로 간섭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이런 부대일수록 동기끼리 생활관을 사용할 수 있게끔 배려하고 일과 이후에는 헬스클럽이나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보호해 줄 필요가 있다."
  

최근 군내에서는 군기사고를 줄이는 방안으로 동기끼리 생활하는 생활관을 허용하는 곳이 많다. 대대급 규모의 부대에는 대부분 동기 생활관이 운영되고 있다. 이와 달리 육군 28사단은 아직도 분대급 인원이 함께 생활하는 내무반 구조였다.
  
장병들이 일과 후 퇴근의 개념을 가지려면 잡무를 줄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육군 3군단장을 거쳐 병무청장을 역임한 김일생 전 청장의 말이다. "병사들이 퇴근 개념을 가지려면 이른바 여가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럼 지금처럼 식기 닦고 청소하고 시설관리 하는 걸 최소화해야 한다. 미군들은 내무반 청소를 하지 않는다."
  
강한석 전 육군 소장도 비슷한 제안을 했다. "군대 가서 '바리깡'으로 머리 깎는 거 배워 이발하는 게 우리 군의 현주소다. 이제 우리도 병사들에게 비용을 주고 일과 후에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이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내가 사령관으로 있을 때 우리 부대에는 군에서 처음으로 민간 미용실을 내준 적도 있다."
  
사병들의 휴대폰 사용도 가능할까. 이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분분하다. 휴대폰 사용에 찬성하는 군 전문가는 장병들의 자율성 보장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강한석 전 소장은 "부대 신참 사병들은 공중전화를 사용할 때 뒤에서 선임병들이 기다리면 편하게 대화하는 게 불가능하다. 사진촬영 등 보안에 문제가 되는 부분을 차단한 휴대폰 사용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공중전화는 되고 휴대폰은 안 되는 시대는 지났다. 신병교육이나 훈련 등을 제외하면 충분히 사용 가능하다"고 했다. 일례로 우리처럼 징병제를 운영하는 싱가포르에서는 사병들에게 일과 이후 휴대폰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휴대폰 허용 시 군기사고가 줄어든다는 보장이 없고 이에 따른 비용부담도 상당하다"면서 반대의 목소리도 나온다. 김일생 전 병무청장의 말이다. "독일과 미국은 전후방의 개념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남북이 대치하고 있다. 최전방에 근무하는 병사들은 휴대폰이 있어도 기지국이 없거나 전파월경 문제로 사용할 수 없다. 전방은 안 되고 후방만 사용하게 한다면 역차별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먼저 기반시설을 확충해야 한다. (정치권에서) 무책임하게 대안을 던지는 건 삼가야 한다."
  
김 전 청장은 군기사고를 줄이기 위해 휴대폰 등을 허용하기에 앞서 "병사들의 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군 일각에서는 후방에서 병과교육을 받은 위생병, 통신병 등의 경우 해병대처럼 기수문화가 생겨 군기사고의 또 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군의 명령체계는 분대장이 하도록 돼 있다. 선임병이라고 무조건 후임병에게 명령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병들은 상호 존중하는 분위기로 가야 한다. 그래야 군내에서 왕따 등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군대 생활관을 미군처럼 2인1실 등의 소규모로 바꾸자는 제안도 나온다. 선임병과 후임병이 뒤섞여 단체생활을 할 경우 코를 고는 등의 사소한 문제로 사병 간 불협화음이 발생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카투사처럼 일과 후에 통닭이나 피자를 주문해 먹을 수 있도록 외부와의 접촉을 개방하는 시도도 해볼 만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이런 병영문화를 만들기 위해 제3의 감독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열악한 병영환경은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해 인권인식을 삐뚤어지게 하고 인권침해 행위로 이어지게 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독일식 군옴부즈만제도(국방감독관제도)를 도입, 제3의 기관에서 병영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도 병영문화 개선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 국방부는 일련의 군기사고를 겪은 뒤 휴대폰 사용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대변인실 천영훈 사무관은 "군내 보안문제로 인해 결정이 쉽지 않겠지만 휴대폰 사용이나 옴부즈만제 도입 등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편 지난 8월 13일 국방부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한 병영문화혁신 방안에는 구타 및 가혹행위 관련 신고포상제도, 현역복무부적합자 조기전역 등의 과제가 포함됐으나 병영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꿀 대안은 제시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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