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8일 경남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자동차로 수백m 산길을 오르자 '128번 송전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술자 4명은 60m가량 올라간 철탑 위에서 안전줄을 묶은 채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육중한 몸집의 크레인들은 쉴 새 없이 부속품을 옮겨 날랐다. 전체 100m 가운데 절반 이상 올라간 128번 송전탑 건설은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128번 공사 현장은 밀양 송전탑 건설을 둘러싸고 주민과 한전·경찰 간 충돌이 가장 심했던 지역이다. 올 6월 농성장을 철거하는 행정대집행 이후 2개월이 지난 공사장에서는 한전 관계자와 공사장 근로자들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박용성 밀양대책본부 부장은 "9월 중순이면 송전탑을 모두 세울 수 있을 것"이라며 "마무리 공사를 거쳐 올 연말까지는 모든 구간의 전선(電線)을 이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25일 현재 밀양 지역 송전탑 69개 가운데 62개가 조립 완료됐고, 나머지 7개가 조립 중이다. 2008년 8월 첫 삽을 뜨고 나서 11차례나 중단됐던 밀양 송전탑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내년 초 신고리원전과 변전소 연결

밀양 송전탑 건설 공사는 울산시 울주군 신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경남 창녕군 북경남변전소까지 보내는 765㎸급 송전선로를 설치하는 공사의 일부다. 애초엔 2010년 말까지 공사를 끝낼 계획이었지만 곳곳에서 반대에 부딪히며 공기(工期)가 길어졌다. 특히 전체 송전탑 161개 중 69개가 들어서는 밀양시는 주민 반대도 가장 거셌다. 작년 초까지 다른 지역에선 모두 합의가 마무리됐지만, 밀양 지역 공사가 지연되며 전체 공사는 결국 4년이 늦어졌다.

한전 입장에서는 각 140만㎾급 신고리원전(原電) 3·4호기를 돌리려면 밀양 송전선로를 조속히 연결해야 했지만, 주민들이 땅 밑으로 전선을 잇는 지중화(地中化) 작업을 요구하면서 난항을 겪었다.

파국으로 치닫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작년 봄부터였다. 정부와 한전이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주민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1회,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3차례 현장을 다녀갔고, 2012년 12월 한전 사장에 취임한 조환익 사장은 40차례 정도 밀양을 찾아가 현지 주민들과 스킨십 쌓기에 정성을 쏟았다. 이런 노력 끝에 공사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밀양시 5개면 30개 마을 가운데 아직 합의가 안 된 곳은 상동면 고답마을 한 곳뿐이다. 고답마을에서도 기초 공사는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다.

극심하게 반대를 하던 주민들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갔고, 쇠사슬로 몸을 묶으며 반발했던 시민단체 인사·정당인 등 외부인들은 밀양을 떠났다. 아직 대책위의 이름으로 반대 활동이 간헐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동력은 크게 떨어진 상태다.

초기 책임자들 소극 대응

밀양 송전탑 문제를 두고 전문가들은 "이렇게 꼬일 문제가 아니었다"고 입을 모은다. 한전 측에서 주민 설득을 소홀히 한 탓에 상황이 악화했다는 지적도 있다. 2008년 8월 공사 시작 당시 "전자파가 암(癌)을 유발할 수 있다" "땅값이 떨어진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한전은 소극 대응으로 일관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업부) 장관이나 한전 사장 모두 '해외 원전(原電) 수주'처럼 외부에 멋있는 일에 열중했을 뿐 골칫거리인 송전탑 문제를 외면했다"고 말했다. 정치권도 주민들 눈치를 보느라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당시 많은 전문가들이 지중화는 비현실적이라고 했지만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이 의견을 무시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