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알카에다’로 불리는 테러범 아피아 시디키(42)가 1995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졸업할 당시로 추정되는 모습.

이라크 반군 '이슬람국가(IS)'가 미국인 기자 제임스 폴리를 풀어주는 대가로 '레이디 알카에다'로 알려진 테러리스트 아피아 시디키(42)의 석방을 요구했었다고 미 일간 뉴욕타임스가 20일 보도했다.

파키스탄에서 유학 온 시디키는 학부 시절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명문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재원(才媛)이다. 이후 미 매사추세츠주(州) 브랜다이스대에서 2001년 신경과학 박사를 취득했다.

시디키는 화학무기와 세균 등을 이용한 대량 학살을 계획한 혐의로 기소돼 2010년 86년형을 선고받았다.

무명(無名)이었던 그는 2003년 미 연방수사국(FBI)의 주요 수배자가 됐다. 시삼촌(媤三寸)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가 9·11 테러를 지휘한 혐의로 미 당국에서 고문받던 중, 테러 운반책으로 시디키를 언급한 것이다. 5년 뒤 여성 문맹률이 높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 말은 못하면서, 지도는 읽는 수상한 여자가 있다"는 현지인 신고가 들어왔다. 시디키였다.

조사 결과는 경악스러웠다. 몸수색에서 나온 쪽지에는 각양각색의 테러 계획이 기록돼 있었다.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 방법, 방사성 물질을 살포하는 폭탄 '더티밤(dirty bomb)' 제조법, 화학무기 개발법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뉴욕의 상징 월스트리트,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브루클린 다리, 자유의 여신상 등에 대한 구체적인 테러 계획도 나왔다. 1기가바이트짜리 휴대용 저장장치에는 테러 관련 문건이 500건이나 들어 있었다.

가방에서는 180여명을 사망에 이르게 할 분량인 맹독성 시안화나트륨 0.9㎏이 발견됐고, 밀봉된 병에서는 각종 화학 물질이 나왔다. 걸어다니는 '폭탄'이었던 셈이다.

몸무게 41㎏에 불과한 시디키는 체포 다음 날 조사실 커튼 뒤에 숨어있다가 근처 M4 소총을 집어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며 수사관들을 쏘는 배짱을 보였다. 재판 직후 파키스탄의 당시 총리는 "'파키스탄의 딸'을 돌려달라"며 송환을 요청했고, 시디키는 이슬람 극단 세력의 아이콘이 됐다.

시디키가 처음부터 극단주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었다. 대학 2학년 때만 해도 시디키는 '이슬람이 파키스탄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 등의 보고서로 상을 받은 온건 무슬림이었다. 하지만 대학원 시절 학생 단체인 '무슬림학생연합(MSA)'에 가입하면서 극단주의자들과 어울리게 됐다고 BBC는 전했다. 당시 지도 교수는 "항상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채, 실험에 성공하면 알라에게 감사 기도를 드렸다"고 그를 기억했다.

함께 자녀를 셋 둔 첫 번째 남편은 점점 아내가 욕설을 일삼는 등 극단적 행동을 보이자 이혼했다. 이후 9·11 테러를 기획해 관타나모에 현재 수감 중인 암마르 알 발루치와 2003년 재혼하면서 완전한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의 투사)가 됐다.

이라크 반군의 시디키 석방 요구를 두고 일부 전문가는 "애초부터 무리한 요구"라며 "처음부터 반군이 폴리를 살려줄 의향이 없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이슬람 국가에는 또 다른 기자 스티븐 소트로프를 포함해 최소 3명의 미국인 인질이 잡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