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한 여고생이 중간고사 시험문제의 복수정답을 인정해달라며 학교재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판결을 받으면서 해당 학교에 비상이 걸렸다.

이로 인해 약 100여 명의 학생들의 성적이 수정되면서 다음달 시작되는 2015년도 대학 수시모집 전형을 앞두고 성적 및 내신등급 정정 등의 조치를 해야 하는 학교 측도 난감해 하고 있다.

전교 1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며 명문대 의예과를 목표로 하는 대구 수성구 모 여고 3학년 배모(18)양은 지난 4월29일 치른 1학기 중간고사 국어(문학Ⅰ)시험에서 23번 문항의 답을 5번으로 적었다. 정답은 2번이었다.

배양은 기말고사에서 시험을 잘 치르면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말고사 난이도가 변별력이 낮은 수준으로 출제되면서 배양의 내신성적이 이 한 문제로 1등급이 아닌 2등급으로 떨어질 처지가 됐다.

이에 배양과 부모는 국어전공 교수 등 전문가의 자문을 구한 뒤 학교 측에 2번 외에도 5번을 복수정답으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했으나, 학교 측은 국어교사 5명으로 구성된 교과협의회를 열어 심의한 뒤 배양과 부모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전교 석차 10등에 내신 2등급의 성적표를 받아든 배양과 부모는 "3학년 1학기 국어 과목에 대한 석차등급에서 1등급의 지위에 있음을 임시로 정해달라"면서 학교 측을 상대로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은 배양의 손을 들어줬다.

대구지법 제20민사부(부장판사 손봉기)는 배양과 부모가 학교법인을 상대로 낸 임시의지위를정하는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고 20일 밝혔다.

재판부는 "출제자가 선정한 정답 외에도 논리적, 합리적, 중립적, 객관적으로 선택 가능한 답항이 있다면 그 자체로 중복 정답을 인정해야 하고 출제자가 선정한 답항만을 정답으로 처리하고 다른 선택 가능한 답항을 오답으로 처리한다면 이러한 정답의 선정과 채점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이 사건 문항에는 출제의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고 어느 하나가 보다 더 확실한 정답으로 우선한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어 정답을 2번 답항으로만 처리한 것은 재량권을 일탈한 것으로 봐야 한다. 특히 대학 수시 전형 일정이 곧 시작되는 등 가처분이 발령되지 않을 경우 신청인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와 급박한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큰 만큼 피보전권리의 소명이 있고 보전의 필요성도 인정되므로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법원의 가처분 결정이 내려지자 해당 학교는 100여 명에 달하는 학생의 성적 수정작업에 돌입했다.

해당 학교 관계자는 "가처분 인용 결정이 내려진 학생 외에도 복수정답을 적은 학생 100여 명의 성적을 이달 말까지 일정으로 수정하고 있으며, 이중 등급이 변경되는 17명 남짓의 학생들의 대학 수시 전형에는 차질이 없도록 할 것"이라면서 "애초 해당 학생이 이의제기를 했을 때 복수정답을 인정했다면 지금처럼 혼란스럽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했다.

대구시교육청 교육과정운영과 관계자는 "중간고사를 치른 지 수개월이 지나 학생과 부모가 학교 당국을 신뢰하지 못하고 전문가 자문을 구한 뒤 가처분 신청을 내는 사례는 처음이어서 난감할 뿐"이라며 "가처분 신청이 아닌 행정소송으로 진행됐다면 학교 측의 과실이 명백하게 나와 제재를 할 수 있지만, 이 경우는 그렇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