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크림반도의 항구도시 세바스토폴에서 콘서트가 열렸다. 크림반도가 지난 3월 러시아에 합병된 것을 축하하는 무대였다. 무대에는 빨강·파랑·검정의 친(親)러 반군 깃발이 나부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절친인 것으로 알려진 할리우드 B급 액션 배우 스티븐 시걸도 참석했다. 노래를 마친 그는 푸틴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들어 올리며 관중을 향해 "나는 러시아인"이라고 외쳤다. 그는 실제로 러시아계 미국인이다.
이 공연을 주최한 단체는 '밤의 늑대(Night Wolves)'다. 러시아 최대 모터사이클 클럽인 이들은 정회원만 5000명이 넘는다. 딱 붙는 검은색 가죽 재킷과 청바지,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가 이들의 상징이다. 밤의 늑대는 그동안 러시아 곳곳에서 민족주의 성향의 공연을 열면서 '우리가 있는 곳이 곧 러시아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사실 1989년 밤의 늑대가 처음 결성됐을 땐 정반대 성격이었다. '반(反)소련 체제'와 '자유'를 부르짖으며 모터사이클·록 음악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공간이었다. 이들은 음악 클럽을 운영하고 콘서트를 열며 러시아뿐 아니라 우크라이나·라트비아·루마니아 등에도 지부(支部)를 세웠다. 1995년에는 자체 의류 브랜드를 만들고 모터사이클 수리점도 열었다.
밤의 늑대가 '민족주의' 색깔을 띠기 시작한 건 2009년 당시 푸틴 총리를 만나면서부터다. 푸틴은 밤의 늑대 회원들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는 등 깊이 교류하며 자신의 남성적 이미지를 강화했다. 푸틴은 이들을 '형제'라 부를 만큼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푸틴은 2012년 7월 밤의 늑대 수장인 알렉산더 잘도스타노프와 크림반도 관광을 즐기다가, 빅토르 야누코비치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4시간이나 늦기도 했다. 지난해 푸틴은 러시아 젊은이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킨 공로로 잘도스타노프에게 훈장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