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빠릿빠릿한 편이 아니다. 너무 걱정돼 부대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집에 전화할 때 '여기 천국 같다'고 말하라고 했다. 우리끼리 일종의 암호를 정했다."(46세 신금범씨)
5일 오후 2시 경기도 의정부 육군 306보충대에 육군 3군사령부 예하 사단으로 갈 장정 1600여명이 모였다. '윤 일병 사망 사건'의 참상이 알려진 뒤 열린 첫 입소식이었다. 이들이 배치될 부대에는 이번에 사고가 난 28사단도 포함돼 있다.
이날 보충대 주변에선 입대에 대한 두려움과 군에 대한 실망이 담긴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부대 정문 맞은편 불고깃집에선 아들과 마주앉은 초로(初老)의 아버지가 "연락 자주 해라" "무슨 일 있으면 집에 무조건 알려라"는 말을 거듭했다. 아버지는 '윤 일병처럼 되지 않는 법'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 말했다. 다른 부모들도 아들을 붙잡고 "윤 일병처럼 당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아들의 팔을 끼고 있던 전미숙(46)씨는 "애 아빠가 아들한테 '맞느니 그냥 확 다 말하고 다른 부대로 옮기는 게 낫다. 절대 쉬쉬하지 마라'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군대가 이 정도까지 썩어 있는 줄 몰랐다" "군대의 높은 사람들도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식당 종업원은 "점심때 '윤 일병'이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서 계속 들렸다"고 했다. 인근 미용실에서 일하는 박현우(34)씨는 "머리를 깎으러 온 사람 수는 평소와 비슷했는데 오늘따라 함께 온 가족이 유난히 많았다"고 했다.
한 어머니는 연병장에서 우황청심환을 삼켰다. 옆에 있던 아들은 "엄마, 사고 안 내고 무사히 잘 다녀올게. 군에서 사고 나는 비율이 바깥보다 낮다는 통계도 있대"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요즘 같은 때 어떻게 그런 말을 해" 하고는 아들 등을 손으로 때리며 울먹였다. 최종애(여·52)씨는 "아들한테는 윤 일병 이야기를 일부러 안 했다. 아들 없을 때만 혼자 '나쁜 놈들'이라며 가슴을 치며 화를 냈다"고 했다. 명영수(51)씨는 "부대 안에 CCTV를 설치해 매일 보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고, 김승자(52)씨는 "며칠째 아들 걱정에 머리가 띵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고 했다.
입대일마다 연병장에서 운영하는 간이 '입영 장정 상담소'에도 평소보다 많은 사람이 몰렸다. 군 관계자는 "평소보다 군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부모가 훨씬 많았다"고 말했다. 길을 안내하던 한 병사는 "평소엔 '입영통지서를 안 가져왔다'는 정도의 문의만 있었는데 오늘은 한 어머니가 '윤 일병 사태로 걱정된다. 병사 입장에서 선임이 때리거나 괴롭히면 어떻게 해야 되나. 신고 체계는 잘 갖춰져 있느냐'고 물어보더라"고 했다.
입대하는 당사자들도 불안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문모(21)씨는 "윤 일병 사건 이후 괴로워서 아버지, 친구들과 술만 마셨다"고 말했다. 그는 "설마 난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설마가 나한테 일어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친구 김모(21)씨는 "한 달 뒤 나도 여기로 입대할 예정인데 막상 와 보니 군 생활 어떻게 할지 암울하다"고 했다. 정모(22)씨는 "무슨 일이 생기면 윤 일병과는 달리 부대에 소원수리도 하고 집에도 무조건 말할 생각"이라 했다.
입소식을 15분 앞둔 오후 1시 45분 "입영 장정 집합"이라는 방송과 호각 소리가 울렸다. 연병장은 "가야 해" "잘 다녀와"라는 말로 가득 찼다. 가족들은 휴지나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