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학자가 현장에 있었더라면 다른 의견이 개진될 수 있었을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인을 "판명 불가"로 발표한 지난 25일. 국과수 발표를 지켜본 박종태 대한법의학회장은 법의학자가 있었다면 유씨의 사인을 밝힐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을 밝혔다.
경찰청에 따르면 한 해 발생하는 자살·타살 등 변사는 평균 2만5000건. 경찰이 부검을 의뢰하는 비율은 그중 14~20%다. 그러나 부검 의뢰를 하지 않는 80%의 변사체 중 범죄로 인해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경우도 있다. 실제로 2012년 10월 경남 김해에서 검사가 부검 없이 '급성 심장마비사'로 결론을 내린 사건은, 지인들이 피해자를 생명보험에 가입시키고 보험 수혜자를 자신들로 바꾼 후 독초를 달인 물을 먹여 죽인 것으로 결론났다.
유씨 시신을 검경이 변사 처리한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씨가 은신한 '숲속의 추억' 별장 근처인 전남 순천 서면 학구리 주변에서 지난 4월부터 발생한 변사는 유씨가 유일했다. 검경은 관행적으로 변사자를 '무연고 노숙자'로 처리했다. 서중석 국과수 원장은 "부검 의사도 시신에 손가락이 없는 것을 보고 의심하긴 했지만 통상적으로 유전자 검사 의뢰만 했다고 들었다"며 "최소한 부검은 국과수 소속 법의관이 했으면 금방 끝났을 텐데 그게 아쉽다"고 했다.
변사체가 발견되면 경찰은 협약을 맺은 관내 민간 의사에게 검안을 맡긴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의학 전문성이 부족한 치과 의사나 한의사 등도 검안을 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검안 시 국과수 법의관들이 나올 수 있는 인력이나 환경이 되지 않는다"며 "주로 개인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나 퇴직한 의사들이 검안을 한다"고 했다.
검안으로도 명확한 사인을 밝히지 못하면 부검을 한다. 문제는 법의학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박종태 법의학회장은 "우리나라에서 법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전문 검안'을 할 수 있는 법의관은 국과수 소속 단 23명뿐"이라며 "법의학과 교수들과 국과수 법의관 출신 개업의를 다 합쳐도 40여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국과수는 지방에 민간 의사를 촉탁의로 세워 부검을 맡긴다. 경찰 관계자는 "민간 의사가 부검을 하는 경우가 20~30%이고 나머지는 지방별로 가까운 국과수 분소에 부검을 의뢰한다"고 했다.
경찰은 부족한 전문가를 대신할 경찰검시관 제도를 2005년부터 운영해 67명의 검시관을 채용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보건의료 관련 학과를 나와 국과수에서 단기 교육을 받았지만 전문성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숭덕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사건이 터지면 검경은 수사에 치우쳐 있어 객관적인 검시를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며 "제3의 법의학 전문가들이 초기부터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