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0일,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을 묻는 말에 많은 엄마가 단원고 교사들을 꼽았다. 아이들을 구하다가 숨지거나 실종된 단원고 선생님은 11명. 그중 한 명이 2학년 2반 담임 전수영 교사다. 단원고 선생님을 꼽았던 엄마 20명 중 6명이 전 교사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고1 아들을 둔 김은정(44)씨는 "아이들을 구하러 뛰어간 선생님의 행동은 계산된 것이 아니라 기본적 책임감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3남매를 키우는 교사 장미영(38)씨는 "특히 '교사의 부모로서 마냥 슬퍼할 수 없다'고 했던 전 교사 부모의 책임감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고(故) 전수영 교사의 어머니 최숙란(51)씨. 지난 5월 20일 딸의 장례식장에서 그가 한 말은 많은 부모를 울렸다. "수영이가 '엄마 나 잘했어?'라고 묻는 것 같아요. 매번 똑같이 대답합니다. '잘했어. 괜찮아. 정말 잘했어'라고." 그 말을 한 뒤 고개를 숙이고 울었던 엄마.
세월호 100일을 하루 앞둔 지난 23일 최씨는 딸의 모교인 과천외고를 찾았다. 그곳은 딸이 교생 실습을 하며 교사의 꿈을 키웠던 곳이기도 하다. 최씨는 딸이 늘 자전거를 세워놓던 학교 후문 울타리를 어루만지며 한동안 눈물을 흘렸다. 그는 "딸이 남긴 자취를 하나씩 정리하며 지난 100일을 하루같이 보냈다"고 했다. 단원고 교무실 딸의 책상 위에 있던 담임교사 명찰, '약속을 하게 되면 반드시 지키자'는 메모…. 무엇 하나 버릴 수 없었다. 지난 5월 29일 그는 딸의 사망신고를 마쳤다. 딸의 죽음이 실감 나 가장 많이 운 날이다.
전 교사는 외가(外家) 3대가 교단에 몸담았다. 외할아버지는 수학 교사였다. 그 아버지를 보고 자란 엄마 최씨가 국사 교사가 됐다. 교육자이자 어머니였던 최씨는 딸에게 '맡은 일에 늘 책임감을 가지라'고 말해 왔다. 사소한 약속도 어기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전씨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교사의 꿈을 키웠다. 임용고시에 합격한 날 모녀는 서로 끌어안고 소녀들처럼 펄쩍펄쩍 뛰었다. 딸은 선배 교사인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어떤 선생님이 되는 게 좋을까?" 최씨는 "학생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선생님이 돼라. 가르치기는 쉽지만 학생을 먼저 생각하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지나가듯 했던 그 이야기를 딸은 신념으로 삼았던 것일까. 삼우제를 마치고 단원고를 찾았을 때 최씨는 딸의 교무실 책상에서 수첩 한 권을 발견하고 눈물을 쏟았다. 작년 2월 단원고에 첫 발령을 받고부터 쓰기 시작한 수업 일지였다. 첫 장엔 '항상 학생을 생각하는 선생님이 되겠습니다'라는 다짐이 반듯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전 교사는 세월호 사고 바로 전날까지 반별 수업 내용과 평가를 꼼꼼히 기록하고 있었다. "교사로서 봤을 때 일지를 매일 그렇게 쓰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거든요. 수영이가 이렇게 학생들을 사랑하고 일에도 열정이 있었는데…."
온 세상을 잃은 듯한 슬픔 속에서도 최씨는 딸의 친구들이 장례식장에 남긴 글에서 희망을 봤다고 했다. '나도 너처럼 학생들을 위해 헌신하는 선생님이 되기로 맹세할게.'
"제가 엄마로서 할 수 있는 말은 하나예요. 나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은 결국 모두에게 해가 됩니다. '남의 자식도 내 자식처럼, 내 자식도 남의 자식처럼' 기른다면 이기적인 어른들로 인한 이런 참사도 더 이상은 없겠죠. 그래야 아이들이 나중에 '유병언·이준석'처럼 안 돼요." 딸이 방에서 키우던 딸기나무에 며칠 전 딸기 한 알이 열렸다. "생전 나지 않던 딸기가 열렸더라고요. 우리 착한 딸이 '엄마 슬퍼하지 마' 하고 선물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