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인이 자(子)법인을 세워 부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놓고 또 다시 '의료민영화'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의료민영화 반대 운동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채 엉뚱한 정치적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미 진보 진영에서는 의료민영화 반대 운동이 크게 확산된 상태다. 이번 개정안을 반대하고 있는 '의료민영화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100만인 반대 서명 운동을 벌이는 가운데 24일 오후 4시 30분 현재 110만명 이상이 의료민영화 반대에 서명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역시 22일부터 이번 개정안에 반대하며 닷새 간의 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이 ‘의료민영화’로 지목한 의료법 시행 규칙 개정안은 지난달 11일 발표된 것으로, 주된 내용은 의료법인의 자법인 설립 허용과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범위 확대 등이다. 개정안이 발효되면 의료법인은 그간 음식점·급식업, 편의점·안경·산후조리업 등에 한정돼 있었던 부대 사업을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한 여행업, 국제회의업과 종합체육시설, 목욕·수영장업, 건물 임대 등으로 확대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부대사업을 위해 외부 투자를 받아 자법인을 설립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더불어 종합병원의 외국인 환자 비율 규제가 완화되면서 더 많은 외국인 환자를 유치할 수 있게 된다.
이 개정안을 ‘의료민영화’라고 주장하는 쪽은 이번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병원이 수익을 추구하면서 병원들이 과잉 진료를 남발해 불필요한 비용을 환자에게 전가하면서 건강 보험 재정이 악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건강 보험이 악화되면 의료 보험도 민영화 될 것이라는 논리다.
반대론자들은 또 이번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병원 간 인수·합병이 허용되면서 의료인력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병원이 거둔 수익이 병원에 재투자되지 않은 채 영리 병원의 주주들에게 빠져 나가면서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가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주장에는 새정치연합 등 야당도 가세해 "정부의 의료영리화 정책이 국민 의료비 부담을 늘리고 의료를 왜곡시킬 것"이라며 영리 자회사 설립 가이드라인을 폐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전문가들과 개정안을 추진한 복지부 측은 다소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 전체 병원과 의원 중 의료 법인이 운용하지 않는 병원과 의원이 98%다. 이들은 이미 아무런 제한 없이 각종 부대사업과 자법인 설립이 가능한 상태다.
이번 개정안은 그간 의료법인이 운용하던 전체 2%의 병·의원에게도 98%의 병원이 가능했던 부대사업과 자법인 설립을 허용해주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게 복지부의 설명이다. 또 반대 측 주장과 달리 이번 개정안에는 병원 간 인수·합병을 허용하는 조항은 담겨 있지 않으며, 의료법인이 자법인 운영에서 얻은 수익을 외부로 배당할 가능성도 희박하다고 말한다.
복지부는 "현행 상속·증여세법에 따라 (의료법인이) 추가적인 세금 부담 없이 자법인을 만들려면 '성실공익법인'이어야 하고, 성실공익법인이 되려면 소득의 80% 이상을 공익목적사업(의료법인의 경우 의료)에 재투자해야 한다"면서 "공정거래법 등을 감안해도 자법인을 통해 의료법인이 수익을 외부로 빼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여러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을 ‘의료민영화’라며 반대하는 것은 의미없는 정치 싸움이라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이번 개정안의 기본 취지는 자본 규모가 큰 소수의 의료법인이 해외 환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국내 의료기관의 90% 이상을 민간에서 운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민영화’라는 단어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최근 일본은 해외 환자 유치 등을 위해 의료 규제를 원스톱으로 풀고 있는데 우리는 엉뚱한 정치 논란에 발목이 잡혀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