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시인 이상(李箱)이 자필로 쓴 ‘러브레터’가 처음으로 발견됐다고 23일 동아일보가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상이 25세 때인 1935년 12월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러브레터’는 최정희 작가에게 보낸 것이다. 최정희는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일본에서 연극을 하다 귀국해 조선일보와 잡지사 삼천리 기자로 활동했다. 편지를 받을 당시 최정희는 23세의 젊은 이혼녀로 삼천리에서 만난 파인(巴人) 김동환과 사귀고 있었다.

지금까지 공개된 이상의 친필 편지 중 러브레터가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편지는 최정희의 둘째 딸인 소설가 김채원씨가 고인의 편지를 정리하다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 연구 권위자로 알려진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문학평론가)는 편지 글씨체가 이상 친필 유고와 일치하고 편지 끝에 ‘李箱(이상)’이라는 사인이 한자로 돼 있으며 최정희 작가가 생전에 “이상에게서 편지를 여러 통 받았지만 모두 찢어버렸다”고 말한 점 등을 들어 이 ‘러브레터’를 이상의 친필 편지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편지에는 최정희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쓸쓸한 마음이 드러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은 “당신은 내게 커다란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을 준 사람입니다. 이젠 당신이 이상하게 미워지려고까지 합니다. ”라고 하거나 “이제 내 마음도 무한히 흩어져 당신 있는 곳엔 잘 가지지가 않습니다. ”라고 썼다.

이상은 “집에 오는 길로 나는 당신에게 긴 편지를 썼습니다. 물론 어린애 같은, 당신 보면 웃을 편지입니다.”라면서 다른 편지를 소개하기도 했다. “나는 이제 너를 떠나는 슬픔을, 너를 잊을 수 없어 얼마든지 참으려구 한다”라면서도 “나는 진정 네가 좋다. 웬일인지 모르겠다. 네 작은 입이 좋고 목덜미가 좋고 볼따구니도 좋다”라고 말해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곧바로 “어리석은 수작이었으나 나는 이것을 당신께 보내지 않았습니다. 당신 앞엔 나보다도 기가 차게 현명한 벗이 허다히 있을 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라고 썼다.

보도에 따르면, 편지 내용을 직접 분석한 권 교수는 이상의 단편소설 ‘종생기’의 여주인공 ‘정희’는 최정희를 모티브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둘의 이름이 같고, 정희가 가족을 위해 일하는 직장여성으로 그려졌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소설 속에서는 정희가 주인공 ‘이상 선생’을 사랑하고 러브레터를 보낸 것으로 묘사돼 있어 현실과 반대다.

권 교수는 “‘종생기’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게 돼 문학사적으로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권 교수는 24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이상의 집’에서 ‘오감도 80주년 기념 특별강연’을 갖고 ‘러브레터’를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