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데이는 12월2일이었고, H아워는 오전 6시였다. 12월 1일 자정을 기해 부산과 대구를 제외한 대전 이남의 모든 지역에 비상계엄령이 발효했다. 빨치산 퇴로를 막기 위해 출동했던 예비 3개 연대와 전투경찰 3개 연대도 정해진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막상 작전이 벌어지자 나는 초조함을 금할 수 없었다. 빨치산이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인쇄한 1000만 매의 귀순 유도 전단이 지리산 일대를 뒤덮었으나, 초기에 뚜렷하게 드러나는 성과는 없었다. 귀순자와 빨치산 주변 가족들을 수용하기 위해 남원과 광주에 수용소도 지었지만, 그곳을 채울 귀순자들은 좀체 눈에 띄지 않았다.

[- 기사 전문은 프리미엄조선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