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옆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산 33번지 야산 3만5945㎡. 5㎞쯤 앞에 울산바위가 보이고, 일대는 50년 된 울창한 소나무 숲이다. 마을 서낭당도 있어 주민들 휴식처이자 자랑거리였다. 워낙 경치가 좋아 수도권에서 이곳으로 이사 온 사람들도 있다. 이 숲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주민 140가구는 지난달 정부와 지자체에 진정서를 냈다.

지난 15일 이 야산을 찾아가 마을 앞 도로에서 바라보니 울창한 소나무 숲은 그대로였다. 그러나 마을 안쪽으로 돌아가보니 상황이 달라졌다. 산은 파헤쳐졌고 소나무들은 사라져 있었다. 군데군데 공사 과정에서 나온 큰 돌들이 뒹굴고 있었다. 산 33번지 반대편 산은 송두리째 사라졌고, 대신 잔디밭이 들어서 있었다. 소나무가 사라진 산은 거대한 레미콘 공장 같았다.

설악산 옆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마을 앞 도로에서 바라봤을 때 울창한 소나무 숲(위)은 산속으로 돌아 들어가 보면 파헤쳐져 사라져 버렸다(아래).

도로변과 마을 안에서 바라본 산의 모습이 각각 다른 데 대해 김종덕(66) 이장은 '법규 때문'이라고 했다. 산지관리법 시행령에 따르면 '고속도로·국도·지방도로의 가시거리 1000m 이내 산은 토석 굴취와 채취가 제한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도로변에서 '보이지 않으면' 산림이 훼손돼도 개발이 허가되는 것이다.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

땅 주인은 '3만5945㎡의 산 면적 중 2만3000㎡를 대상으로 1만9000여㎥의 토석을 채취해 동해고속도로 건설용으로 판매하고 주택 4동을 짓겠다'는 개발 허가 신청을 냈다. 고성군은 2008년 12월 31일 1차 허가, 올 5월 30일부터 개발 규모를 축소한 2차 허가를 내줬다. 2차 허가가 나온 것은 그동안 주택 건설이 부진해 허가가 취소됐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마을 산을 개발하는데 주민들과 상의도 하지 않았다"고 항의했다. 그러나 잦은 민원 발생을 막기 위해 산지관리법(28조)은 '암석 채취 외에는 주민 동의를 얻을 필요가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적으로 하자가 없고, 사유권이 행사되는 가운데 원암리의 마을 뒷산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산에 있던 서낭당도 이제 마을로 옮겨졌다. 땅을 매입한 김모씨는 "개발 과정에서 바위가 많이 나와 일단 건설을 유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민들은 개발 계획 면적이 2만3000㎡에 달해 그간 800여 그루의 소나무가 반출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성군청은 "개발 과정에서 많은 소나무가 뽑혔을 것"이라며 "이 중 재선충 검사를 거쳐 정식으로 반출된 소나무는 418그루"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