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혹성탈출’ 시리즈는 1963년 발표된 프랑스 SF소설 ‘유인원의 행성’(피에르 불 지음)으로부터 시작됐다. 찰턴 헤스턴 주연의 1968년작 ‘혹성탈출’은 이 유인원들이 점령한 행성이 사실은 미래의 지구임을 바닷가에 쓰러진 자유의여신상으로 표현한 마지막 신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리부트된 프리퀄, 즉 전편에 앞선 이야기를 다룬 후속편 3부작은 일단 유인원의 승리로 결말이 정해져 있는 셈이다. 하지만 스포일러가 오히려 영화흥행에 도움이 된다는 일부 조사처럼, 결미보다는 과정이 궁금하다. 1부인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은 최신 경향을 담은 굉장히 영리하면서도 개연성 있는 스토리를 선보이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유인원이 인간의 지능을 갖게 된 것을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이 자초한 재앙으로 그렸다. 인간의 생태계 파괴와 이로 인한 폐해, 이에 대한 경고가 요즘 할리우드를 사로잡고 있는 화두다.

10일 개봉한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감독 맷 리브스)는 이 트릴로지의 2부다. 1부에서 10년이 지난 시점, 치명적 바이러스 시미안플루로 인류는 멸종위기에 이르고 뇌기능 개선제의 영향으로 똑똑해진 침팬지 시저(앤디 서키스)가 이끄는 유인원 무리는 뮤어 숲에서 나름의 문명을 건설한다.

아직 제목이 정해지지 않은 3부는 맷 리브스 감독이 또 다시 맡기로 하고 2016년 개봉을 예정하고 있다. 트릴로지를 예정한 작품의 중간 편들이 그렇듯 이번 작품 또한 뚜렷한 결말은 내지 않은 채 이러저러한 에피소드와 내외부적 갈등, 배신의 드라마로 130분을 채운다. 영화 내의 대립이 이루어지는 방식이 너무 뻔해서 심심하긴 하나 생각할거리를 준다는 점에서 오락거리를 찾는 관객보다는 평론가들에게 호응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원작소설의 풍자적 요소를 끌어들여 유인원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비춰보이게 하는 구성이 짜임새 있다. 하지만 거울을 보듯 양쪽 그룹에서 벌어지는 다툼의 방식이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것은 관객 입장에서는 같은 테마의 반복처럼 여겨진다. “유인원이 인간보다 낫다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얼마나 인간과 똑같은지 알게됐다”는 시저의 대사가 주제를 대변한다.

인간의 손에서 자란 시저는 인간과의 공존을 바라지만 실험대상으로 이용돼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보노보 코바(토비 켑벨)는 보복하고 싶어한다. 한편 샌프란시스코의 인간 생존자 공동체의 리더 드레이퍼스(게리 올드먼)은 유인원들을 짐승이라고 폄하하며 죽여야한다고 주장하지만, 주인공 말콤(제이슨 클락)은 유인원들과의 평화적 공생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크게는 인간과 유인원의 대결이지만 각자 그룹 내에서 의견차로 인한 갈등이 벌어지는 구성이다. 이 가운데 시저와 말콤은 종을 뛰어넘어 교감하며 우정을 나누는데 이러한 도식적 관계에 너무 치중하다 보니 이해가 안 가는 행위들이 나오기도 한다. 설득력이 떨어진다.

유인원 무리와 생존자 그룹의 행동양식을 면밀하게 설정한 것은 영화적 재미를 더한다. 다윈의 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데즈먼드 모리스의 ‘털없는 원숭이’라는 동물학적 인간 접근방식을 연상시킨다. 유인원들은 원시인들처럼 기초적 도구를 사용하며 동굴벽화를 그리고 짧은 단어, 보디랭귀지를 이용해 대화를 나눈다. 우두머리 자리를 놓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우두머리의 결정에 모든 구성원들이 따르는 방식은 아직까지 포유류가 보여주는 생태를 따르고 있음을 드러낸다.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의 백미는 ‘라이브 퍼포먼스 캡처’라는 신기술의 본격 적용이다. 세계최고의 CG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뉴질랜드 웨타디지털이 참여했다. 기존의 모션캡처가 그린스크린이나 블루스크린을 설치한 실내의 통제된 환경에서 촬영한 후 배경과 합성하는 방식이라면, 라이브퍼포먼스캡처는 실제 로케이션에서 3D카메라, 모션캡처 카메라 등 수십대의 카메라로 벨크로 수트를 입은 배우들을 촬영한다. 영화의 85% 이상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의 열대우림을 비롯한 야외에서 찍은 후 디지털 작업을 한 장면들이다.

또 업그레이드된 정교한 기술력으로 유인원들의 다양한 털의 질감을 세세하게 표현해냈다. 특히 이전까지는 젖은 털의 표현이 어려워 비가 오는 장면을 넣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일부러 비가 오는 신을 넣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다. 이 같은 방법들로 사실감을 극대화시켰다는 것이다. 배우들도 실제 배경에서 보다 몰입도 높은 감정연기를 펼칠 수 있었다고 한다.

영화 전반이 이러한 표현력의 향상을 자랑이라도 하듯 유인원들을 클로즈업하는 경향이 많아졌다. 그러나 원숭이과의 얼굴 근육이 사람만큼 발달하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동질감을 느끼기는 힘들다. 그러다보니 눈빛연기를 더욱 강조하게 된 것 같은데, 이들의 감정표현에 대한 공감을 강요하는 것 같은 무리수가 느껴진다. 최첨단 기술이 상당히 매끄럽게 응용돼 마치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시현상까지 일으키는 것은 칭찬할 만하다.

이 영화는 미국 개봉일인 11일에 맞춰 10일 국내 개봉했다. 이로 인해 영화계에서는 한 차례 소동이 일었다. 당초 16일 개봉하기로 하고는 1주나 앞당긴 ‘변칙개봉’이라는 것이다. 10일 개봉예정이던 ‘사보타지’의 수입사인 메인타이틀픽처스를 필두로 한 중소영화사들, 한국영화제작가협회까지 나서 개봉일 변경 취소를 요구했다.

"국내에서 배급사 및 제작사들은 관례적으로 수개월 또는 1년 전부터 배급하는 영화에 대한 라인업을 공유해 배급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른 영화의 후반작업 및 광고비의 집행 등 막대한 경비를 조달하면서 배급준비를 하게 된다"며 "개봉계획을 급작스럽게 변칙적인 방법으로 변경할 경우, 배급계획에 대한 심각한 혼란과 더불어 막대한 경제적인 손실을 입게 된다"는 설명이다.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의 수입·배급사인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측은 배급일을 조율하는 기관이나 단체가 없는 상황에서 이런 식의 마녀사냥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시장논리에 따라 가장 최적화된 날짜를 정할 뿐이지 따로 사전협의를 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CG작업이 예상보다 빨리 끝나면서 심의를 일찍 끝낼 수 있었고, 글로벌 동시개봉을 원하는 관객들의 요청과 불법 사전유출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결정"이라며 "극장시스템이 디지털화, 상영 직전까지 세밀한 조정이 가능하게 되면서 각 상영관이 자체적으로 유리한 작품들을 선택할 뿐"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