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부가 최근 잇따른 스파이 문제의 책임을 물어 베를린 주재 미 중앙정보국(CIA) 책임자를 추방했다고 10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다른 나라의 외교 관계자에게 추방령을 내리는 것은 적대국에나 할 법한 강경 조치로, 우방국 사이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이날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주요 장관들과 통화로 긴급회의를 진행한 다음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메르켈 총리는 “동맹국을 정탐하는 것은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라며 미 정부를 비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지난 8일 독일 연방검찰이 미 정보기관이 독일 연방정보국(BND) 직원을 포섭해 정보를 빼낸 혐의를 잡고 용의자를 체포한 것으로 알려진 데 이어, 독일 국방부에서도 첩보활동을 벌인 정황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미 정부가 이에 대해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 않자 독일 정부가 강수를 뒀다는 분석이다.

슈테픈 자이베르트 독일 정부 대변인은 “현재 진행 중인 독일 검찰의 수사에 반하고, 수개월 동안 풀리지 않은 미국의 첩보활동과의 관련성이 의심돼 추방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고 FT는 전했다. 자이베르트 대변인은 “미국은 여전히 독일의 안보를 위한 주요 동반자이지만, 이 관계에는 상호 신뢰와 솔직함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전날에는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이 텔레비전 토크쇼에 출연해 동맹관계인 독일 정부 수장을 감청한 미 정보 당국에 대해 “바보 같은 행위”이며 “삼류 같은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에 대한 독일의 여론은 최근 심각하게 나빠진 상황이다. 지난해 컴퓨터 기술자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불법 도·감청 사실을 폭로한 이후, 미 정보 당국이 독일과 영국 등 우방국 정상의 휴대전화 통화까지 감시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외교 문제가 불거졌다. 메르켈 총리의 휴대전화도 불법 감청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독일 정부는 공식적으로 불만을 표했지만, 미 정부는 책임을 회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