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축구는 ‘화려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한두 명쯤 기본적으로 제치는 테크닉을 갖춘 이들의 개인 전술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사실이다. 메시(아르헨티나)와 네이마르(브라질), 수아레스(우루과이)와 산체스(칠레) 등 각국 간판 공격수들의 움직임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개인기를 선호하고, 또 중시하는 그들도 월드컵이라는 절실한 무대에 서면 마음가짐이 달라지는가보다. 브라질 월드컵 16강 토너먼트 첫 경기로 펼쳐진 브라질과 칠레전에서 잘 드러났다. '개인기 왕국' 브라질도, '공격적인 남자의 팀' 칠레도 기본 전술은 투쟁심과 조직력이었다.
브라질과 칠레가 29일 오전(한국시간) 브라질 벨루오리존치의 에스타디오 미네이랑에서 대회 첫 번째 16강 경기를 펼쳤다. 전후반과 연장까지 120분을 1-1로 우열을 가리지 못해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PK 결과는 3 - 2, 힘든 싸움의 승자는 브라질이었다. 남아공 월드컵 16강에서도 브라질에게 패했던 칠레는 다시 고비를 넘지 못했다. 브라질은 아주 힘든 산을 넘었다.
브라질도, 칠레도 딱히 흠잡을 데 없는 수준 높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애초부터 보는 맛이 기대됐던 매치업이다. 네이마르와 산체스라는, 세계 최고의 클럽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A급 플레이어를 앞세운 공격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수준이다. 때문에 '창 대 창'의 화려함이 예상됐다. 하지만 공격력보다 도드라졌던 것은 중원의 강한 압박과 성실하고 투쟁적인 수비 조직력이다.
어느 쪽도 좀처럼 공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상대가 하프라인을 넘어 자신들의 진영으로 넘어오면 쉽게 드리블이나 패스가 나오지 못하도록 강하게 압박했다. 후방에서 전방으로 직접 향했던 롱 패스가 적잖았던 이유다.
파울이 나와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 위치에서는 다소 거칠다 싶은 충돌이 자주 나왔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테크닉을 봉쇄하는 동시에 단단하게 무장된 정신력을 상대에게 보여주려는 의도된 행동이었다.
공격에서 수비로 전환될 때 모든 선수들의 백업 플레이도 빠르고 성실했다. 경기를 중계한 이영표 해설위원은 “모든 선수들이 희생하는 자세로 수비에 가담하고 있다. 이것이 축구”라는 말로 감탄사를 전했을 정도다.
적어도 이 경기에서는 브라질도, 칠레도 화려함보다 끈끈한 조직력에 방점을 찍었다. 네이마르도, 산체스도 이 경기에서는 마음껏 개인기를 과시할 수 없었다. 대신 전방부터 공을 빼앗기 위해 달려드는 산체스와 몸을 던져 태클을 시도하는 네이마르를 볼 수 있었다.
하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축구를 즐기는 것이 익숙한 남미 선수들이지만 간절한 투쟁심이 느껴졌다.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반드시 트로피를 들어올리기 위해 국가 제창 때부터 비장함이 느껴진 브라질, 브라질 원정에서 브라질을 26번 만나 6무20패로 철저하게 약했던 징크스를 깨고 더 높은 곳으로 오르고 싶은 칠레의 절실함이 모두 전해졌다.
특히 상대적으로 전력이 열세인 칠레가 보여준 성실함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거의 모든 선수들이 체력 고갈에다 근육 경련까지 호소했으나 어느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1무2패라는 최악의 성적으로 월드컵을 마감한 대한민국 선수들의 무기력했던 플레이가 겹쳤던 브라질과 칠레의 경기였다. 한국의 실패는 팀 전술과 개인 전술 이전에 마음가짐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적잖았다. 월드컵이라는 무대의 소중함, 국민적 염원까지 담은 간절함이 떨어졌다.
브라질과 칠레라는 수준 높은 팀들도 월드컵의 기본 전술은 투지였다. 자신을 이기고 상대를 꺾고 싶은 강한 투쟁심이었다.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대한민국 축구가 진지하게 생각해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