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출신 방송인 이계진의 근황이 궁금하다 싶더니, 손자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얼마나 예쁜지, 두 손자를 바라보는 육아일기를 엮어 책까지 펴냈다.
라는 제목만 봐도 그의 끔찍한 사랑이 전해진다.  

"음, 할아버지가 책을 만들었는데 그거 설명하는 날이래요. 거기에 규성이랑 지한이,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가 들어 있대요."
이계진의 큰손자, 규성이(7)의 말이다.
"할아버지가 지한이, 규성이 이야기 했는데, 그거 자랑하는 날!"
둘째 손자, 지한이(5)의 말이다.
"아까 점심 먹으면서 아이들한테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물어보니 글쎄 이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아직 한글도 모르는 무식쟁이라 이번에 낸 책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아이들이 다 알고 있더라니까요?"(웃음)
화계산 깊은 자락에 위치한 이계진의 시골집. 할아버지가 된 이후 기록한 일기를 엮어서 낸 가 나온 것을 기념해서 조촐한 출간 파티가 열렸다. 모처럼 '아들 손자 며느리'가 다 모인 시간, 너른 마당을 뛰어다니는 손자들을 바라보면서 하는 그의 말과 표정에 애정이 뚝뚝 묻어난다.

손자 사랑에 푹 빠진 할아버지

이 세상의 모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손자를 끔찍하게 여긴다. 오죽하면 “손자 자랑할 거면 만 원씩 내고 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생겼을 정도니 말이다. 이계진 역시 지인들의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수시로 듣는 손자바보다.

“이계진이 바쁜 줄 알았더니 애들 똥 싼 거 치우는 이야기를 하고 있네, 하시겠죠.(웃음) 할아버지로서 아주 행복한데 이게 자랑으로 들릴까 봐 걱정도 됩니다. 그저 제가 아이들과 함께하며 행복감을 느낀 이야기를 통해서 여러분도 행복감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저뿐 아니라 모든 할아버지들이 다 똑같을 거예요.”

매사 신중한 그는 사실 이번 책을 내기까지 꽤 고민이 컸다. 내 새끼라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예쁘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천재처럼 보이지만, 세상에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다. 누구나 결혼하면 낳는 것이 생명이기도 하고 손자와 손녀가 없는 사람들에겐 본인의 행복한 이야기가 아픔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지만, 그가 손자 사랑이 담긴 일기를 매일 쓴다는 사실을 아는 지인의 권유로 책이 나오게 됐다. 그도 본인의 이야기를 파스텔 분필을 잡고 무지개 뜬 언덕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손자 예쁜 건 누구나 똑같아요. 무한 책임이 없거든요. 내가 내 새끼 낳아서 기를 때는 어려웠고, 책임감도 있었잖아요. 엄하게 하고 절제시키고 그럴 수밖에 없어요. 지금 제 아들 역시 그렇게 하고 있고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 책임이 없어요. 그저 사랑스럽기만 할 뿐이에요. 내 새끼가 새끼를 낳았다는 신비감이 굉장합니다.”

책 제목처럼, 손자에게서 본인이 똥꼬로 불려도 좋다. 어떤 미운 말을 해도 할아버지의 눈에는 그저 예쁜 장미꽃이다.

“아이가 어디서 배워왔는지 똥꼬라는 말을 쓰더라고요. 저는 나쁜 말이라고 지적하기보다는 그럼에도 따뜻한 말을 써서 아이가 스스로 좋은 말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책 제목이 그렇게 나왔죠.”

첫 손자가 태어나던 감격의 순간부터 이마에 숯을 묻혀준 이야기, 할아버지가 머리를 직접 잘라준 이야기 등 한 생명이 태어나 일어난 일이 소소한 동화처럼 그려진다. 하나하나의 이야기에는 따뜻한 웃음이 있고, 손자를 생각하는 할아버지의 사랑이 담겨 있다.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나중에 아이들이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것들, 꼭 기억하고 싶은 것들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손자

이계진은 지난 2010년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떨어진 이후 정치적인 행보를 완전히 접었다. 지금은 화계산 자락 깊은 곳에서 전원생활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있지만, 주목받는 방송인에서 국회의원으로 활보하던 그의 행보가 조금씩 작아지면서 적적해진 것도 사실이다.

"사실 선거가 끝나고 우울증이 오기도 했어요. 아내도 그렇고요. 그때 손자들을 만나면서 굉장히 힐링을 했습니다.정말 행복해졌어요. 이 작은 생명체가 세상에 나와서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전에 모르던 세상을 알아요."

손자들을 보면서 느끼는 행복감만큼 새삼스럽게 배우는 것도 많다. 그중 하나는 어린 생명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표현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더라는 것을, 그는 손자들과 부대끼면서 배웠다.

"어려서 모를 것 같지만 다 알고 있더라고요. 어느 날은 아이가 '오 마이 갓'이라는 말을 쓰는 거예요. 이 말을 어디서 배웠니 물어보니 놀이방에서 배웠대요. 신기해서 "규성아, 오 마이 갓이 무슨 뜻이야? 나쁜 뜻이야, 좋은 뜻이야?" 물었더니 나쁠 때 쓰는 말이래요. 뭔가 잘못됐을 때 그 말을 사용하더라고요. 정확한 건 모르지만, 알고 있잖아요."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존중하는 마음도 배웠다. 그는 손자들이 생긴 이후로 아이들의 입장에서도 생각할 수 있는 눈을 갖게 됐다. 어떤 일이나 의사 결정을 할 때도 아이의 시선으로 보는 습관은, 할아버지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아들과 며느리의 직장 문제로 이사를 하게 됐을 때다. 그때 그는 손자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해보게 되더란다.

"저도 젊었을 때 아이들 데리고 이사를 많이 했어요.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못 했어요. 그저 좁은 방에서 넓은 방으로 가는 건데 당연히 가겠지 했지. 그런데 손자를 보니 갑자기 달라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염려가 되더라고요. 아이들이 좀 더 넓게 뛰놀게 하기 위해서 집을 마련했다고 충분히 설명을 해줘야 할 것 같아요. 아이들 아빠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당부를 했죠."

좋은 아버지가 필요하다
"아들이 아빠로서 악역을 하지 않으면 힘들 것 같아요. 인정해요. 그런데 할아버지로서 가슴은 아프죠. '심하게 하지 마라. 부탁이야. 할머니. 할아버지 왔을 때는 조금 살살 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하면서 중재를 해줘요. 규성이가 아빠 눈치를 보는 것 보면 너무 불쌍해요. 애들 할머니는 울고 그랬어요. '애비야, 조금만 약하게 해라.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된다. 의미는 안다. 나도 아비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심하면 아이가 공포감을 가지고 상처가 되면 역효과다. 조금만 톤 다운을 해라' 하고 따로 불러서 조언을 해줘요."

책의 행간에는 좋은 아버지에 대한 그의 소신도 들어 있다. 아이들에게 엄하게 대하는 아들을 보고 대처하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교육방식을 모두 이해한다. 손자가 생기고 행복한 것은, 아빠가 된 아들의 모습을 볼 때이기도 하다.

"애비가 손자들을 엄청 예뻐해요. 정말 귀여워해요. 저는 짐짓 '아버지 앞에서는 그러는 거 아니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예쁘더라고요. 마침 애비가 사진을 잘 찍어서 아이들 사진을 항상 찍어요. 그 모습도 참 보기 좋고요."

가족의 중요성과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그에게 이 책은 가족이 해체되는 시대에 그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할아버지에서 아들, 손자로 이어지는 아버지 교육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지난 선거에서 우리 모두가 굉장한 메시지를 얻었죠. 과거 아버지상의 잘못된 점을 고치게 됐어요. 가족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어떻게 사회의 사랑을 실천할 것인지가 숙제였는데, 이번에 극명한 두 사람(서울시 교육감 후보자였던 고승덕과 조희연)이 엄청난 메시지를 줬어요. 시대가 변했어요."

그는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가 제일 부러워하는 것이 한국의 대가족제도라는 것을 언급하면서, 다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저도 부모님을 모셨어요. 집사람은 힘들었지만 아이들이 할머니 모시는 걸 보고 자랐어요. 제가 힘들어하는 것도 보고 엄마가 힘들어하는 것도 보고, 어떻게 살았는가를 모두 봤어요. 이런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가족 안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것들. 이런 것들이 바로 서면, 조금 힘들어도 자연스럽게 분위기 전환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세대가 아무리 변해도 변치 않는 우리의 가치관이 있다. 첫아이를 낳으면 이마에 숯을 묻히는 것, 장례문화, 제사 등 이계진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나중에 아이들이 자라서 자연스럽게 알았으면 좋겠다. 손자들이 자랐을 때는 외국에 가서 살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낡은 것은 낡은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것'이라는 본인이 생각하는 중요한 인생의 가치를 할아버지로서 알려주고 싶다.

결국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
정치에서는 완전히 물러난 그는 요즘 라디오 DJ가 됐다. 국방홍보원이 운영하는 국방FM을 통해서 방송활동을 재개했다. 정책 시사 프로그램인 로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 4시부터 5시 40분까지, 토요일에는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방송한다.

"하루의 7시간은 라디오를 위한 시간이에요. 매일 왕복 130㎞를 오가면서 방송을 해요. 건강이 허락되는 동안에는 계속하려고 해요. 이동 시간이 3시간 반에서 4시간 정도 되는데 이동하면서는 라디오도 듣고 음악도 듣고, 좋은 이야기도 듣고 그래요. 그 시간을 죽은 시간이 아닌 오늘 방송에서는 어떤 말씀을 드릴까 생각하는 생산적인 시간으로 보냅니다."

얼마 전에는 종편 프로그램에 패널로 초대되어 출연했는데, 손자들이 보고 "할아버지가 어떻게 저기 나오지?"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아직 손자들이 할아버지가 방송인이라는 사실은 잘 모르지만, 할아버지가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 알게 되는 날은 곧 올 것이다.

"더 바라는 건 없어요. 지금처럼 별일 없이 살면 좋죠. 특별한 즐거움이 있어야 좋은 것이 아니니까. 별일 없이 가족과 함께 살 수 있으면 그게 최상의 행복이에요."

그는 요즘 행복하다. 지금의 나이(68세)에 레귤러 라디오 프로그램을 조용히(그는 기자에게 '조용히'라는 말을 꼭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은 선택받은 축복이다. 건강 역시 그렇게 나쁘지 않다. (그는 '좋고'가 아니라 '나쁘지 않고'라는 점을 강조했다.) 자다가도 미소가 지어지는 손자가 둘이나 있고, 또 가족이 있다.

"아직은 아이들이 이 책을 읽지는 못하지만, 나중에 제가 세상에 없을 때 이 책을 읽고 '우리 할아버지가 이런 사람이셨구나', '우리 가족은 이렇게 이어져왔구나'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일모레 죽는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우리 모두는 죽으니까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할아버지가 없는 세상이 올 거잖아요? 그때 손자들이 할아버지가 심어놓은 대추나무, 블루베리를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손자들에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너희들을 위해 이런 사랑을 보여줬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거죠 뭐."(웃음)

[- 더 많은 기사는 여성조선 7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