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건물에서 탈출한 학생들이 건물에 갇혀 있던 25㎏짜리 사람 모형을 출구로 빼내고 있다. 학생들은 완전한 암흑 상태에서 장애물로 가득찬 50m 길이 복도를 통과해 출구를 찾아내야 했다.

"놔, 좀 놓으라고. 나도 안 보여!"

"야, 좀 같이 가자. 너만 살 거냐?"

김모(15)군은 어둠 속에서 자신을 붙잡는 동네 친구 박모(15)군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폭 1m 남짓한 건물 복도 곳곳에는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와 매트리스, 소파들이 널브러져 있어 수시로 넘어지거나 머리를 부딪혔다. 두 남학생을 뒤따라오던 여중생 2명은 10분 넘게 출구를 찾지 못하자 울음을 터뜨렸다.

붕괴된 건물에 들어가기 전 김군은 "복도 길이가 50m요? 5분이면 탈출할 수 있겠네"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김군은 20분 만에야 땀범벅이 된 채 출구에 나타났다. 김군이 무너진 건물 안에서 구조하기로 돼 있었던 25㎏짜리 사람 모형은 여기저기가 깨져 있었다. 바닥에 질질 끌고 모서리에 처박았던 것이다. 나오자마자 물부터 찾았던 김군은 "눈앞이 안 보일 만큼 어두워 당황했다"고 말했다.

경기 남양주시 중앙119구조본부(이하 구조본부)에서 21일 초중고생 70명이 참여한 '재난 현장 생존 훈련'이 열렸다. 아이들은 야영과 캠프파이어를 포함해 1박 2일 일정으로 건물 붕괴, 수난 사고, 지하철 사고, 응급환자 발생, 화재 등의 상황을 직접 체험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수도권에 사는 기초수급대상자나 한 부모·조손 가정 아이들이다. 구조본부는 2012년 3월부터 재난에 취약한 가정을 초청해 훈련을 해왔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과 의사소통이 어려운 다문화 가정, 저소득층 어린이가 주 대상이었다.

전국 소방관들이 구조훈련을 받는 훈련장은 재난 현장의 느낌을 거의 100% 살렸다. 건물 붕괴 훈련은 외벽 절반 이상이 무너져 뼈대만 남은 3층 콘크리트 건물에서 이뤄진다. 지하철 사고 훈련장은 실제 객차칸이다. 소화기와 수동 개폐장치의 위치까지 똑같다. 훈련 운영을 맡은 주영국 소방관은 "훈련 상황이라는 걸 잊은 참가자들이 때로 뭉클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3대(代) 가족들을 모아 훈련했던 지난해 9월. 붕괴 건물 탈출 훈련을 하던 40대 남성이 일흔이 넘은 아버지와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건물 속을 헤매다 작은 출구를 발견했다. 아버지를 먼저 보낼지 아들을 먼저 보낼지 망설였다고 한다. 자식의 표정을 읽은 할아버지가 "난 살 만큼 살았으니 손자를 먼저 보내라"며 양보했다. 신혼부부조차도 서로 "먼저 나가겠다"며 다투는 훈련장에서 3대가 보여준 감동적인 모습에 소방대원들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지난 2년간 지속됐던 훈련은 세월호 참사로 두 달여 중단됐다. 천안함 사고와 아이티·일본 대지진 때 투입됐던 최정예 구조 교관들 전원이 참사 현장에 투입된 것이다. 이날 다시 시작된 훈련에는 수난(水難)사고 훈련이 추가됐다. 진도에 투입됐던 대원들이 제안했다고 한다. 배가 침몰하는 상황을 가정해 최대 수심이 10m인 풀 속으로 구명조끼를 입고 뛰어드는 '비상 퇴선 훈련'이다.

수난구조훈련장에서 소방관들이 학생들이 타고 있는 고무보트를 뒤집는 모습. 뒤집힌 보트와 수면 사이에 만들어진‘에어포켓’에 들어가 5분 동안 체온을 유지하며 구조를 기다리는 훈련이다.

이날 박모(14)양은 물 앞에서 5분을 머뭇거렸다. 물속에는 특전사 출신의 소방관 4명이 있었다. 세월호 사고 해역에서 시신 6구를 수습했던 박민식 소방관은 "진짜로 배가 침몰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해. 숨 참고 물을 보지 말고 앞만 보라"고 외쳤다. 망설이던 박양이 뛰어내렸다.

물속으로 뛰어든 학생들은 고무보트에 올라탔다. 수영장 가운데쯤 다다르자 교관들은 10명의 학생이 탄 보트를 뒤집었다. 학생들은 뒤집힌 고무보트 안에 들어가 물과 보트 사이에 있는 공간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에어포켓 속에서 생존하는 훈련이었다. 박 소방관은 "체온이 떨어지는 걸 막아야 하니까 겨드랑이를 붙이고 다리를 오므리세요!"라고 소리쳤다.

훈련 막바지 정광복 소방관이 말했다. "사고가 났을 때 가족이나 친구를 데리고 나오지 못할 것 같으면 빨리 나와서 119에 신고를 하세요. 그건 친구를 배신하는 게 아니에요. 구하지도 못하는데 끝까지 남아 있는 게 더 어리석은 행동이에요." 이날 훈련에는 비상 대기조를 제외한 40명 전원이 교관으로 참여했다. 주말에는 별도의 일과가 없지만 모두가 자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