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다"
1974 서독 월드컵에서 선수로 우승을 차지하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감독으로서 우승컵을 들어올린 독일의 '축구영웅' 프란츠 베켄바워(현 FC바이에른 뮌헨 회장)가 남긴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2008년부터 메이저 대회 3연패 대업을 달성하며 세계축구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던 '무적함대' 스페인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이 이끄는 스페인 축구대표팀이 19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의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 B조 2차전 칠레와의 경기에서 0-2로 패했다.
이로써 스페인은 지난 14일 네덜란드전 1-5 대패에 이어 2패를 당하며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됐다. 2002 한일 월드컵의 프랑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이탈리아처럼 전 대회 우승국이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겪었다.
압도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스페인은 우승후보 중 하나로 언급됐다. 스페인의 몰락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티키타카(짧은 패스로 경기를 풀어나간다는 의미의 축구용어)'를 앞세운 스페인은 유로 2008과 2010 남아공 월드컵, 유로 2012에서 연이어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축구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티키타카를 완성했다는 평가와 함께 축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FC바르셀로나도 한해 동안 6개의 트로피를 거머쥐며 유럽을 제패했었다.
티키타카는 매우 강했다. 상대방에게 공을 잡을 기회조차 주지 않았으며 날카로운 패스는 상대팀의 빈 공간을 파고들었다. 스페인과 바르셀로나는 경기 기록에서도 앞섰고 결과에서도 승리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티키타카는 약점을 노출했다. 초창기의 티키타카 격파는 조제 무리뉴 감독의 '질식 수비'에서 나왔다. 점유율을 포기한 채 최대한 수비라인을 끌어내린 10백으로 공간 자체를 내주지 않았다.
'질식 수비'에서 진화한 것이 게겐프레싱(압박)이었다.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의 위르겐 클롭 감독에 의해 발전된 게겐프레싱은 공을 뺏긴 그 자리에서 전진압박을 가하는 것이었다. 당황한 상대는 패스할 곳을 찾다가 공을 빼앗기고 빠른 역습에 무너졌다.
지난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강한 압박과 빠른 역습으로 다시 한번 바르셀로나를 쓰러뜨렸고 티키타카를 바르셀로나에 심었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바이에른 뮌헨도 레알 마드리드에 무릎을 꿇었다. 티키타카가 넘지 못할 산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됐다.
그리고 이번 브라질 월드컵을 통해 티키타카는 종말을 고했다. 지난 14일 공격적인 스리백을 들고나온 네덜란드를 상대로 스페인은 티키타카를 고집했다. 빈틈을 내주지 않는 네덜란드 문전에서 스페인은 의미없는 패스만 주고받았다. 스페인은 네덜란드 진영에서만 공을 주고받았지만 단 한 번의 역습에 무너졌다. 빠른 발을 가진 네덜란드의 아르엔 로벤을 막을 수비수가 스페인에는 없었다.
칠레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델 보스케 스페인 감독은 1차전과 달리 사비 대신 다비드 실바를 투입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전술은 그대로였고 패스를 주는 선수만이 바뀌었을 뿐이다. 1차전 대패의 여파로 선수들의 컨디션은 최악이었고 티키타카의 핵심과도 같은 정확한 패스는 칠레 선수들에 의해 자주 차단됐다.
세계 축구의 흐름이 '압박과 역습'의 시대로 넘어갔다. 점유율과 패스횟수 등 스페인이 남긴 압도적인 기록들이 승리를 안겨주지 못했다. 스페인이 이번 월드컵 실패를 곱씹으며 새로운 대안을 떠올리지 못한다면 '무적함대'는 오랫동안 가라앉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