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안경을 쓴 김군(19)이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춤을 추며 손끝에서 수십장의 CD를 뽑아냈다. 객석에서 '와' 탄성이 나왔다. 웃음짓는 소년 마술사의 까까머리가 시선을 끈다.

오는 8월 열리는 부산국제매직페스티벌의 주니어 예선이 지난 8일 부산예술회관에서 열렸다. 머리를 어깨까지 기르거나 웨이브를 넣어 멋부린 다른 소년 마술사들과 달리 김군과 이군(17), 허군(19), 조군(17)은 짧은 스포츠형이다. 넷은 경기 의왕시 고봉 중·고교(옛 서울소년원) 동문이다. 가출과 절도 같은 어두운 기억을 이겨내고 있는 친구들이다.

부산국제매직페스티벌 국내 예선에 나선 고봉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묘기를 선보이고 있다.

"반성하자고 생각은 하면서도 선생님들께 짜증만 냈어요. 그런데 '아, 나도 저런 멋진 일을 하고 싶다'는 게 생겼어요. 선생님이 보여준 마술이요." 이날 무대에서 공과 막대로 마술을 펼친 허군을 매료시킨 건 마술사 출신인 손경수(33) 교사다. 그는 3년 전 법무부 공채를 통해 고봉학교 교사가 됐고, 작년 봄부터 마술 특별반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은 처음에 호기심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마술 도구를 집어던지며 "그만두고 싶다. 힘들어 못하겠다"고들 했다. 이들을 집중하게 할 마술 같은 방법은 없었다. 손 교사는 거듭 "마술은 정직한 거야. 연습과 비례해서 느는 거야"라고만 했다. "진짜네!" 하는 학생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연습하면 다 돼요. 잘 안 되면 계속 더 해보면 돼요. 처음 알았어요.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걸." 이군 얘기다.

손놀림이 능숙해지면서 부산국제매직페스티벌 무대에 서볼 목표로 강훈련에 나섰다. 여럿이 영상을 촬영해 응모했는데, 넷만 예선 진출 자격을 얻었다. 마술 시작 2개월밖에 안 된 '초짜'들은 연습에 몰입했다. 공 마술을 연습한 친구들은 요즘 화장실 갈 때도 손가락 사이사이에 공을 끼우고 다닌다. 예선 일주일 전부터는 새벽 4시까지 연습했다.

하지만 예선을 마친 조군은 눈물을 쏟았다. 마술사로 취업하려고 이벤트 회사에 원서까지 낸 그는 이번에 음향 시설이 말썽을 부리는 바람에 준비한 음악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당황한 나머지 실수했다. 빨간 불꽃이 이리저리 옮겨다니자 관객은 신기해했지만 조군은 연습 때만큼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선생님들의 위로에 그는 "떨어지면 내년에 다시 도전하겠다"고 했다. 예선 결과는 오늘(13일) 발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