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이스라엘 북단 레바논 국경 근처의 작은 마을 말롯 타시하. 산속 한 요양원에서 거동이 불편한 80~90대 노인들이 20대 남녀가 떠먹여 주는 죽을 먹고 있었다. 식사 후 청년들은 휠체어를 밀고 노인들과 산책을 나갔고 일부는 설거지와 청소를 시작했다. 치매 노인을 씻겨주는 청년도 보였다.
히브리어로 '하느님 도움의 집(Beit Eliezer)'이라는 뜻의 이곳에는 24명의 홀로코스트(2차대전 유대인 대학살) 생존자들이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의 손발이 되어주는 사람들은 간병 봉사를 위해 이스라엘을 찾은 30명의 독일 젊은이들이다.
독일에서 직업학교를 마치고 작년 12월부터 1년 일정으로 이곳에 온 라이마(23)씨는 "모든 독일인이 나치와 같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왔다"며 "보상금을 지급하는 거로는 유대인 학살의 기억을 절대 지울 수 없다"고 했다. 1984년 독일 기독교 단체가 설립한 이 요양원에서 봉사하려면 1년 이상 머물겠다는 서약을 해야 한다. 그 이하는 받아주지 않는다. 독일인 매니저 카이린(42)씨는 그 이유에 대해 "생존자들과 마음을 나누려면 최소 1년의 기간이 서로 간에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선 18세 이상의 독일 젊은이 30여명이 생존자를 간병하고 있다. 나치에 부역했던 할아버지의 과거를 속죄하기 위해 찾아온 손자·손녀들도 많다고 한다.
자원봉사자에 대한 사전 교육도 철저하다. 이곳에 오려는 독일 청년들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이해하기 위해 한 달간의 사전 교육도 받았다. 봉사자 라이마씨는 "교과서에서 600만명이 학살당했다는 이야기를 읽었지만 생존자 1명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이 더 충격적이었다"며 "나치가 이들의 인생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들을 때마다 부끄럽고 죄인이 된 것 같았다"고 했다. 4년째 이곳에 머무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 수산나(91) 할머니는 "처음엔 간병을 하러 온 독일 청년들과 눈 마주치는 것도 떨렸다"며 "그토록 독일인을 두려워했던 내가 독일 젊은이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라이마씨는 "이분들이 독일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먼저 다가가기 두려웠다"며 "시간을 두고 아픔을 이해하며 마음의 문을 열었다"고 했다.
요양원은 자원봉사자들이 숙식을 해결할 공간을 내부에 마련해 준다. 봉사자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독일 젊은이들은 1년 이상의 긴 봉사활동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직업을 갖고 돈을 버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을 한다고 여긴다.
이 시설 실내엔 히브리어와 독일어가 병기돼 있고, 5억원이 넘는 연간 예산은 독일에서 보내오는 개인 독지가들의 후원으로 충당된다. 독일인의 민간 차원 봉사활동은 이스라엘과 독일 수교가 이루어진 1965년 이전부터 시작됐다. 1961년 설립된 독일의 '평화를 위한 행동·화해·봉사(ARSP)' 같은 단체는 지금까지 1500명의 독일 젊은이들과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연결해 줬다. 매년 6~8월 여름방학이 되면 다양한 단체를 통해 독일 청년 수백명이 이스라엘 전역으로 몰려온다.
라이마씨는 "자원봉사를 하러 왔다고 말하면 거리에서 처음 보는 유대인들이 먼저 다가와 '감사하다'고 얘기해요. 그럼 저도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합니다. 저에겐 감격스러운 순간입니다."
과거를 대하는 독일과 일본의 차이에 대해 라이마씨는 '교육의 힘'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역사 시간마다 항상 배워왔기 때문에 우리의 과오를 인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며 "하지만 인정하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된다. 각자가 할 수 있는 뭔가를 더 해야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