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회사에 보내며 시계를 보니 한국시각 6월6일 심야입니다. 현충일(顯忠日)이지요. 나라마다 기념할 날이 있지만 그중에도 우리 현충일격인 메모리얼데이(Memorial Day)는 매우 중요합니다. 나라 구한 영웅들의 날이니까요.

넬슨 제독은 우리 이순신 장군에 비견될만한 해군제독이다. 그는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르면서 대영제국의 문을 활짝 열었다.

영국 옥스포드 울프슨칼리지에 온지 20일이 지나서야 이곳에 영국공군(RAF)의 훈련기가 추락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았습니다. 건물 옆 벽에 새겨진 글귀를 그제야 본 것입니다. 돌로 된 명패는 이런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1944년 5월4일 애빙턴에서 출격한 훈련기가 추락했다….”

사고로 조종사 찰스 네이런과 윌리엄 헤일리, 무선통신사 존 모헌이 사망했습니다. 당시 그들의 나이는 스물세살, 열아홉살, 스무살이었습니다. 살아있다면 구십이 됐을 꽃다운 청춘을 불귀(不歸)의 객으로 만든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2차 대전 중 영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간 독일의 V로켓이었습니다. 히틀러는 대영(對英) 해상봉쇄가 무산되자 V로켓을 무차별로 쏘아올렸습니다. 그중 한발이 하필이면 훈련 중이던 영국공군 훈련기에 맞은거죠. 불운입니다.

피카딜리서커스는 옥스포드서커스와 함께 런던의 대표적인 번화가입니다. 고급상점과 백화점이 끝없이 늘어선 이 거리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늘 붐빕니다. 그곳을 걷던 중 우연히 만난 작은 교회에서 명패를 발견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정원(庭園)을 비스카운트 사우스우드의 기부로 재건했다….” 여기서 전쟁이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이어진 2차 세계대전을 말합니다. 정원에 바쳐진 헌사(獻辭)는 무엇일까요. 명패는 ‘시민의 용맹(Courage)과 불굴의 용기(Fortitude)’를 말하고 있습니다.

피카딜리서커스와 옥스포드서커스 사이의 큰 길에서 우연히 본 글귀. 이 교회의 정원이 2차 대전중 파괴됐지만 재건됐다는 내용과 함께 영국인의 불굴의 용기에 헌사를 보내고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할 것은 영국인들이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승리 못지않게 기념할만한 것은 용기라는 사실입니다. 누군들, 어느 나라인들 전쟁에서의 승리를 염원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용기입니다. 민주주의에서 소중한 것이 ‘절차’인 것처럼 말입니다.

옥스포드 남쪽 윈체스터는 중세를 무대로 한 ‘원탁의 기사’에 나오는 라운드테이블(圓卓)으로 유명합니다. 시청사 한복판에 진짜 원탁이 걸려있고 그것을 보러 관광객들이 오는데 진짜 아더왕과 기사(騎士)들의 것인지는 모릅니다.

옛 잉글랜드의 수도로, 부자가 많기로 유명한 도시를 거닐 때 뜻하지않게 노르망디상륙작전 포스터를 여러번 보게됐습니다. 바로 제가 이 글을 보내는 1944년 6월6일은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념일입니다. 벌써 70년전이지요. 영국 남부 사우스햄턴 등지에서 출발한 6500척의 함정과 1만2000대의 전투기가 17만 병력의 진두(陣頭)에서 이 모래바람 날리는 프랑스 해안을 강타했습니다. 작전이 성공하자 히틀러는 경악했고 그것은 독일 패망으로 이어집니다.

이 작전 기념행사 포스터를 보면서 경북 영덕에서 인천상륙작전 당시 양동작전의 일환으로 펼쳐진 장사상륙작전을 떠올렸습니다. 독자 여러분 가운데 장사상륙작전을 기억하는 분들이 과연 몇명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사(長沙)전투는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실시된 기만행위치고는 대가가 컸습니다. 학도병으로 구성된 상륙군을 잔뜩실은 함정이 해안을 바로 앞에 두고 좌초한 것입니다. 옴짝달싹 움직이지못한 상륙군은 인민군의 먹이가 됐습니다.

희생이 컸지만 피의 대가는 허무합니다. 당시 참전한 노병들이나 그 가족, 국방부 관계자만이 아는 ‘잊혀진 전투’가 된 것입니다. 우리 전사(戰史)에는 이런 사례가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생존자들이 사라지면 기억도 없어지겠죠.

옥스포드 보들리안도서관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장서 수 영국 2위라는 기록 때문이 아니라 희귀본이 많기 때문입니다. 재건축중이라 일반인 출입을 금하는데 알파벳 ABCD…순서로 그림을 그려놓은 공사가림막이 이색적입니다.

보들리언 도서관 외벽에는 알파벳 순서로 그림이 그려져 있다. A는 소설가 제인 오스틴, B는 도서관 창립자인 보들리, C는 이솝우화를 처음 영어로 번역한 캑스턴, D는 이탈리아의 작가 단테다. 이 책들을 전부 소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A는 ‘오만과 편견’ 등의 소설로 유명한 제인 오스틴을 말합니다. 그 오스틴의 작품 초반본이 이곳에 있다는 자랑입니다. 그런 보들리안이 공사 중에도 기획하는 행사가 있습니다. 1914년 7월 시작된 1차 세계대전입니다.

보들리안도서관 근처 옥스포드 시티센터의 유서깊은 서점 블랙웰의 윈도우에도 1차 대전 관련 책이 많습니다. 대체 이 나라는 70년 지난 노르망디상륙작전에 이어 100년이된 1차 대전까지 끄집어내다니, 그 기억의 끝은 어디일까요.

보들리언 도서관은 지금 보수중이다. 그런데도 사진 오른편에 붙은 것처럼 '그레이트 워', 즉 1차 세계대전 관련 전시는 공사중에도 벌이겠다고 밝혔다.
옥스포드 중심부의 워터스톤 서점. 블랙웰과 함께 규모를 자랑하는 이곳 쇼윈도우엔 제1차 세계대전 관련 서적들이 즐비하다.

그러고보면 영국인들의 기억벽(僻)은 유명하다는 느낌을 받게됩니다. 그들의 두뇌가 좋아서가 아니라, 특출한 암기비법을 가져서가 아니라 가는 곳마다 누군가를, 어떤 날을 되살려내는 글귀들이 입시생들의 책상처럼 붙어있습니다.

옥스포드 울프슨칼리지 앞 벤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두개의 고동색 나무벤치에도 글귀가 새겨져있습니다. ‘이 장소를 사랑했던 조셉 파카스를 기념하며. 그가 희망을 품으며 바라봤던 이 풍경’. 벤치는 아내나 자식이 기증했을겁니다.

울프슨 칼리지 출입구에 있는 벤치. 옥스포드 출신으로 지금은 사망한 기증자의 것이다. 후배들은 이곳에 앉아 지친 다리를 달래며 선배가 꿈을 꾸던 풍경을 바라본다.

별로 값 나가지 않을 것 같은 의자지만 하루 수백명이 지친 다리의 피로를 풀기 위해 그 위에 앉습니다. 그리곤 조셉 파카스라는 1975년에 이미 세상뜬 얼굴모르는 선배의 이름을 다시 한번 돌아보겠죠. 이게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요?

선배는 후배에게 자신의 열정을 전합니다. 후배들은 그런 선배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세계최고의 지성으로 거듭나려고 새벽까지 자신을 갈고 닦습니다. 제가 옥스포드에서 본 것은 첨단기계나 멋진 건물이 아닌 ‘소박한 사랑’입니다.

한국을 떠나올 때 요란했던 ‘세월호 참사’는 옥스포드에서도 화제였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것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부터 지방선거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물었습니다. 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다만 그것이 논의되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안전을 획기적으로 바꿀지 불투명하다는 확신만은 머릿속에 맴돌고있습니다. 6월은 알다시피 전쟁이 일어난 해입니다. 그것이 보훈처나 노병(老兵)들의 행사일까요, 국민적 행사일까요.

사고만해도 그렇습니다. 삼풍백화점 참사, 대구지하철 화재, 화성씨랜드 유치원생 참사같은 일들이 기억할 수조차 없이 많지만 ‘대책 마련’은 당시의 구호에만 그치지 않았습니까. 기억하는 국민과 망각(忘却)하는 국민의 차이….

저는 그것이 오늘날 영국과 한국의 격차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 격차를 줄이려면 세계적으로 빠르다고 정평이 난 한국인들에게조차 인내를 요하는 고통의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이겠죠.

오블리스 노블리주의 모범을 보인 처칠 전 수상은 생애에 걸쳐 4개 대륙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전했다. 젊어서는 병사로, 나이 들어서는 대영제국을 히틀러의 침공에 맞서 지켰다.
20세기 최고의 영웅으로 꼽히는 윈스턴 처칠. 그가 태어난 침대가 말보로 공작 소유의 블레넘 궁전에 보존돼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