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자 문제를 재조사하기로 한 5월 30일 북한과 일본의 스톡홀름 합의의 ‘미래’와 관련해 중요한 변수는 미국의 의중이다. 미국이 동아시아 외교 전략의 큰 틀에서 이번 북·일 합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북·일 합의를 북한과 한·중·일의 역학 관계에서만 볼 수는 없다. 미국의 외교 전략을 깊숙이 꿰뚫으면서 북한, 나아가 아시아를 이해하는 일본 학자에는 도쿄대 법학정치학과의 구보 후미아키(久保文明·58) 교수가 있다. 구보 교수는 일본의 미국정치 연구의 일인자다.
현 아베 신조 정권은 물론 역대 일본 정권에서 ‘국제정치 자문관’으로 일해 왔다. 도쿄대 교수로서만이 아니라 현재 워싱턴과 뉴욕을 오가며 미·일관계를 중심으로 각종 포럼의 연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6월 4일 그와 전화 통화를 하고 이번 북·일 합의의 의미와 전망에 대해 물었다.
- 왜 지금 일본과 북한이 접근하고 있다고 보는가.
"아베 총리는 일본인 납치 문제를 재임기간 중 해결해야 할 우선과제로 잡고 있다. 경제위기 속에서 제재 완화를 원하는 김정은(북한지도자)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일·북 회담이 진행되고 있다. 단기간일지 모르지만 서로 이해가 일치한다.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이 한층 더 서두른다고도 볼 수 있다."
- 납북자 문제를 재조사하기로 했는데, 이번 북·일 회담이 수교로까지 나아가나.
"아베 입장에서 볼 때, 납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다고 해도 갈 길이 멀다. 북한의 핵 미사일 문제 때문이다. 납치 문제 하나만 하더라도 일본 국민 모두가 납득할 만한 답을 내놓기는 어렵다. 국민적 동의 없이 수교가 이뤄질 가능성은 극히 낮다. 핵 미사일 문제와 관련해 큰 진전이 없으면 안 된다. 평화조약도 상상하기 어렵다.
일본 국민과 지식인은 일·북 회담에 대해 그리 큰 관심이 없다. 일·북 수교가 아니라 납치 문제에 대한 관심이 대부분이다. 일·북 합의를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북한의 납북자 조사결과에 대한 면밀한 검증 없이 제재를 완화한다는 데 대해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아베는 구체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위치에 있다. 현재는 외무성 직원만 움직이고 있지만, 생존자 문제가 확실해질 경우 아베를 비롯한 정치가들이 나설 것이다. 생존자의 확인이나, 납치된 일본인의 귀국과 같은 결과가 없을 경우 아베도 곤란해질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2002년 9월 북한 방문 이후처럼 여론이 한층 더 악화될 수도 있다.”
- 아베가 평양에 갈 것으로 보나.
"납치된 생존자가 존재하고, 전원 또는 일부가 귀국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일 것이다. 고이즈미의 예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납치 문제를 주도한 북한 내 책임자에 대한) 처벌도 과제 중 하나다."
- 이번 북·일 회담을 통해 일본과 북한은 각각 어떤 성과를 얻어낼 수 있나.
"일본으로서는 납치 피해자 구제가 가장 중요하다. 더불어 아베 정권의 안정화와 장기화도 이뤄질 것이다. 그동안 북핵 6자 회담에서 일본의 역할이 약했는데, 그것도 만회될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경제제재 완화와 경제 상황의 호전을 기대할 수 있다."
- 일본의 대북 제재 완화가 이뤄지면 어떤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보나.
"양국 간의 인적교류가 활발해진다. 조총련 간부의 북한 방문이 이뤄질 것이고, 결국 조총련 자금도 북한에 전달될 수 있다. 그렇지만, 1972년 일·중 수교처럼 한순간에 모든 것을 해결하는 식은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은 일본인을 납치했다. 그것도 모자라 핵과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했다. 북한이 저지른 그동안의 문제들을 전부 해결하지 않는 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와 저우언라이(周恩來) 사이의 일·중 수교와 같은 결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 북·일 수교를 전제로 한 대북 경제보상 얘기도 나오는데, 어떻게 전망하나.
"그것도 아직 멀고도 먼 과제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뒤의 이슈이다. 그 같은 과정으로 나가면서 한국과의 협력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이 (북한에 대한 경제적 배상, 보상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 모르지만, 현재와 같은 악화된 일·한 관계를 감안할 때 한국의 요구나 요청에 의한 (대북) 경제 지원은 상상하기 어렵다.
미국의 입장과 반응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미국은 일본이 납치 문제 해결을 중시 여긴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이 대북 제재를 완화하고 북한과 접근하는 데 대해 경계심을 갖고 있다. 미국은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북한을 계속해서 제재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납치 문제는 기본적으로 일·북 두 나라의 문제이다.”
- 북·일 회담이 북핵 6자 회담의 재개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나.
"그동안의 6자 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는 경시됐다. 핵·미사일에 관한 타협이 이뤄진다 해도 납치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일본 입장에서 볼 때 납치 문제 해결 없이는 북한과 타협할 수 없다. 그동안 6자 회담 참가국들은 납치 문제를 대하는 일본의 강경한 자세를 비판해 왔다. 경우에 따라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주변국들과 다소 문제가 생겨도 일본·북한 간에 해결해야 할 부분이 납치 문제이다.
6자 회담에 대해 좀더 얘기하자면, 6자 회담은 이미 붕괴 상태다. 미국과 러시아 관계는 최악이다. 미국과 중국도 해킹 등 사이버 보안 문제, 남중국해 갈등으로 인해 악화 일로이다. 일본과 한국, 일본과 중국의 관계도 나쁘다. 이같은 험악한 상황에서 다섯 나라가 북한에 대해 똑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 최근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 흐름을 어떻게 보나.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원래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정책으로 일관해왔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점차 강경한 자세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지난 4월 말 오바마가 일본, 한국, 싱가포르, 필리핀을 방문해 나름대로 아시아 국가들에 신뢰감을 주기는 했지만, 한층 더 중국을 압박하는 행동이나 발언을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지금 이 시각에도 중국은 남중국해·동중국해 전 해역을 통해 힘에 기초한 팽창정책에 나서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스스로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한층 강경해질 것이다. 대담한 무력도발이 계속될 것이다.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에서 국지전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계획적 전쟁이 아니라 우발적 충돌이다.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양국의 노력이 절실하다. 중국은 그 같은 노력에 응해야 한다. 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센카쿠 주변이 전쟁에 돌입할 경우 미국의 입장은 확고하다. 미국 대통령, 국무장관, 국방장관, 의회 등 모든 곳에서 센카쿠가 미·일 안보조약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재삼재사 표명한 상태이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미국의 신뢰는 땅에 떨어질 것이다. 중국은 일본과 미국 사이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작전을 구사하고 있다.”
-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을 어느 정도로 보나.
"한국은 외교의 기본 축을 현재 중국에 두고 있는 듯하다. 일본을 적대시하고, 미국과의 관계는 북한을 견제하는 수준에 그치는 느낌이다. '한국을 잃어버리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미국인도 적지 않다. 전반적으로 보면 중국이 한국을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듯하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그 같은 상황이 과연 현명한 것인가 의문을 갖지만, 한국 국민 스스로가 판단할 문제임은 분명하다. 한국과 달리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약화되고 있다. 그렇지만 에너지와 식량 두 가지 측면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하다.
한반도에서의 중국의 영향력과 달리, 아세안에서의 중국의 위상은 부정적이다. 최근 아세안 7개국을 대상으로 한 국가 호감도 조사가 이뤄졌다. 세계에서 가장 신뢰하는 나라를 묻는 질문에 일본이 1위로 33%, 미국이 16%로 2위, 중국은 5%로 5위에 그쳤다. 아세안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경제력 차원에 그칠 뿐, 신뢰관계 구축에는 실패한 상태이다. 아세안에서의 일본의 영향력은 결코 과소평가될 부분이 아니다. 최근 중국의 해상팽창과 함께 일본·필리핀·베트남 간의 관계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 앞으로 아세안과 일본의 관계는 한층 강화될 것이다.”
- 북·일 회담에 대한 한국 측 반응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근까지 일본은 한국과의 정상회담을 요청해 왔다. 반응이 부정적이기 때문에 앞으로 당분간 한·일 정상회담은 기대하기 어렵다. 사실 한·일 정상회담이 일본 외교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은 (북·일 회담에 관한) 투명성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 입장이다. 일본은 그 같은 요청에 대해 충실히 답하고 있다.
납치 문제 해결과 관련해 한국이 일본에 크게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반대한다 해도 논리가 빈약하다. 대북 제재 완화도 한국이 생각하는 것만큼 크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핵·미사일 문제 해결도 중시한다는 점에서 한국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 일본을 대표하는 지성인의 한 명으로 일본과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에 하고 싶은 말은.
"일본의 진정성을 알아주기 바란다. 역사문제 해결은 용서하고 용서받는 양측이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일본은 1995년 무라야마(村山)) 담화 등을 통해 일본이 저지른 역사적 과오를 수차례에 걸쳐 표명해왔다. 주권국가로서 역사 문제 해결은 점진적 해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마음에 안 든다고 1965년 일·한조약을 무효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노(河野) 담화(1993년 8월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사과한 담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려 했지만, 결과는 불신과 반목뿐이다. 아시아여성기금에 관한 얘기가 한국에 충분히 전해지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편집자주:아시아여성기금은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의 약칭. 민간 차원에서 기금을 모금해 아시아 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하는 일본의 단체다. 일본 정부는 1990년대 위안부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떠오르자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 때 민간기구인 아시아여성기금을 발족시켜 각국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주도록 추진해 왔다. 1997년 1월 일본의 기금 관계자들이 서울에서 위안부 피해자 5명을 만나 위로금 200만엔과 함께 하시모토 총리의 편지를 전달했지만 한국 측이 ‘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편법’이라며 반발해 그동안 위로금 지급이 사실상 중단돼 왔다.)
아시아여성기금은 민간인에 의한 기부금으로 설립됐다. 세금이 아니라 일본 국민의 마음을 담은 것이다. 한국이 거부한 것은 아주 유감이다. 당시 일본은 강제연행된 일본계 미국인에게 제공된 수준의 금액을 한국 측에 제시했다.”
- 아베 정권의 과거사 부정과 집단적 자위권 문제가 한국과의 관계 악화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21세기 역사를 되돌아보면 미국·필리핀과 영국·인도에서 보듯 서로가 돕고 평화적으로 나가는 형국이다. 일본과 한국·중국의 관계는 전혀 다르다. 사실 일본은 과거 식민지였던 대만·베트남·필리핀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전후(戰後) 일본은 군국주의를 버리고 평화주의로 일관해왔다. 현재 논의 중인 집단적 자위권은 일본만 행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모든 나라가 행하는 국제적 상식이기도 하다. 한국과 중국이 과거 문제에 집착하는 것은 과거 역사를 카드로 쓰기 위한 전략적 차원의 행동이 아닌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아시아의 평화를 지켜나가려는 일본의 의도를 한국민 모두가 이해하고, 미래로 함께 나아가기를 충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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