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시인

8년 전인 2006년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마틴 루서 킹 퍼레이드 전야제에서 한 흑인 노병(老兵)을 만났다. 그분은 허리에 총 맞은 상처를 보여주며 떠듬떠듬 거리는 말로 동두천·의정부·낙동강 전투 이야기를 하였다. 자기는 6·25전쟁 때 한국을 위해 싸운 참전 용사인데 그 뒤로 한국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해 죽기 전에 꼭 한번 방문하고 싶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었다. 그의 이름은 레리 레딕이었다.

그 자리에서 그 흑인 노병에게 대한민국 국민의 이름으로 큰절을 하였다. 그리고 당장 그해 6월에 한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초청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얼마 후 워싱턴으로 가서 미국 백악관 신우회 회원과 경제인들에게 설교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질문을 쏟아부었다. "목사님, 한국은 왜 성조기를 짓밟고 불태웁니까? 미국은 한국을 위해 피 흘려 싸워준 우방인데 왜 싫어합니까?" 순간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이렇게 설명했다. "그것은 오해입니다. 미국인들이라고 모두 다 한국을 좋아하지는 않는 것처럼 대다수 한국인은 미국을 좋아하지만 그렇지 않은 소수의 모습이 언론에 비치는 것일 뿐입니다."

이런 일들을 계기로 한국과 미국의 우호 증진을 위해서는 민간 외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호국보훈(護國報勳)의 달인 6월이 되면 미국을 중심으로 여러 나라의 6·25전쟁 참전 용사를 한국에 초청하고 있다. 이름도 모르는 낯선 이국 땅에 와서 청춘의 피와 땀을 쏟아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운 파란 눈동자의 용사(勇士)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오늘의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그들을 초청하면 오히려 그분들이 더 감사하고 눈물을 적시는 것이었다. "우리를 초청해줘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을 위해 왜 피 흘리며 싸웠는지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겠습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울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대한민국의 번영과 눈부신 성장을 보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한번은 이 행사를 통해 강원도 철원 '철(鐵)의 삼각지대' 전투에서 함께 포로가 되었던 한·미 두 노병이 재회했다. 미군 용사의 이름은 로렌조 오르테가(당시 19세), 국군 용사는 학도병이었던 김영헌씨(당시 17세)였다. 교회 만찬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놀라서 부둥켜안고 흐느꼈다. 그들은 전쟁 당시 일주일 동안 포로로 잡혔다가 함께 사선(死線)을 넘어 탈출했다. 그런데 이들이 60년 후 우연히 만난 것도 신기했지만,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 더 신비스러웠다.

수십년 만의 한국 방문을 통해 감동받은 노구(老軀)의 6·25전쟁 참전 용사들은 집으로 돌아간 후에는 못 말리는 한국의 홍보대사가 된다. 그래서 일본이 독도 문제를 일으킬 때는 백악관에 항의 서한을 보내고, 재미 한인의 권익 보호와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캘리포니아주 세리토스시에서는 한인을 시장으로 뽑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매년 100명 가까운 6·25전쟁 참전 용사들이 한국에 와서 6~7일 동안 판문점과 서울·수도권 일대를 둘러본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하던 우리 교회 교인들은 그분들이 정말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적극적인 마음으로 봉사하게 된다. 그러다가 공항에서 헤어질 때는 그분들과 함께 부둥켜안고 엉엉 울어버린다. 그 모습은 마치 이산가족이 오래 기다리다 상봉한 뒤 다시 이별하는 장면 같다. 그런 눈물의 의미는 대한민국 국민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행사를 고깝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한번은 평양을 방문하였을 때 북쪽 간부들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왜 미국 참전 용사 초청 행사 같은 것을 합니까? 다시 싸우자고 부추기는 것입니까?"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 "싸우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다시는 전쟁의 비극이 없도록 방지하자는 것입니다. 지난날 전쟁의 아픔과 고난을 잊지 않고 기억할 때 아직 끝나지 않은 이 길고 긴 전쟁도 종식될 것이 아닙니까?" 비판은 국내에서도 있었다. "교회가 왜 그런 일을 하느냐? 혹시 쇼하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감사와 즐거움으로 하는 진정성이 그런 비판을 잠재울 수 있었다.

올해는 국내에 6·25전쟁 참전 용사들을 초청하는 것과 아울러 미국 시카고에서도 참전 용사와 그 가족 500여명을 초청하여 보은 행사를 갖는다. 미국에서 행사를 열면 몸이 불편하여 한국에 올 수 없는 분들까지 모실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6월이 다가온다. 6월이 되면 흑인 노병 레딕의 젖은 눈동자가 생각난다. 그는 작년에 6·25전쟁을 추억하며 젖은 눈을 감았다. 그러나 내 마음에는 여전히 그분의 붉은 눈동자가 남아 있다. 그럴수록 더욱 눈물이 적셔진 슬프도록 푸른 6월을 맞는다. 하지만 6월은 참 고마움과 보은(報恩)의 사랑을 드리는 달이기도 하다. 슬프도록 푸른 6월, 그러나 더 고마운 6월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