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2014월드컵 H조 1차전(6월 18일 오전 7시) 상대인 러시아가 A매치 무패행진을 8경기로 늘렸다.
러시아는 26일 밤 11시부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슬로바키아와의 홈 평가전에서 후반 37분 터진 알렉산더 케르자코프(32·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했다.
케르자코프는 슬로바키아전까지 A매치 79경기 25골을 기록 중이다. 25골은 러시아 현역 선수 중 최다이자 역대 2위에 해당한다. 러시아 A매치 통산 최다득점자는 1992~2003년 A매치 71경기에 나와 26골을 넣은 블라디미르 베스차스트니흐(40)다.
2014월드컵 유럽예선에서도 10경기 5골 2도움으로 공격을 주도한 케르자코프는 본선대비 평가전에서 45분 출전에 그치고 공격포인트도 없었다. 예선 당시 왼쪽 날개였던 알렉산드르 코코린(23·디나모 모스크바)은 중앙 공격수 주전으로 급부상했다.
이러한 최근 분위기를 반영하듯 케르자코프는 슬로바키아전에도 후반 29분에야 코코린과 교체되는 형태로 투입될 수 있었다. 그동안의 소외감과 8분 만에 결승골이라는 결과물을 낸 자신감의 결합 때문일까? 경기 종료 직후 케르자코프는 기자들에게 "전반 러시아는 '느린 축구'를 하는 탓에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며 러시아 대표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한 러시아대표팀의 파비오 카펠로(68·이탈리아) 감독에게 주어진 2번째 질문이 바로 케르자코프 발언 관련이었다. "케르자코프는 전반 러시아가 느린 축구를 해서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단지 선수단의 컨디션 문제였나 아니면 미드필더 로만 시로코프(33·FC 크라스노다르)가 교체로 들어갔어야 했나?"
러시아 중원의 핵심 미드필더로 꼽히는 시로코프는 슬로바키아전 선발은 물론이고 교체대기 명단에서도 빠졌다. 러시아 스포츠전문매체 '스포르트복스'는 지난 7일 "뒤꿈치·무릎·아킬레스건 부상 경력이 있는 데다가 이번 시즌 적잖은 결장으로 충분한 훈련을 하지 못해 실전경험이 부족하다. 좋은 징조가 아니다"고 시로코프의 상태를 걱정한 바 있다.
질문을 받은 카펠로 감독은 표정이 굳어지면서 "케르자코프가 어디서 그리고 언제 그런 말을 했나?"고 되물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라는 답을 들은 카펠로 감독은 "알았다. 그런데 나라면 우리 경기력이 나빴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패스를 더 자주 그리고 빨리할 필요가 있었다"고 케르자코프의 비판에 수긍하는 모습도 보였다.
2014월드컵 유럽예선 F조에서 중앙 공격수 케르자코프(5골 2도움)와 왼쪽 날개 코코린(4골 1도움)의 조합은 9골 3도움을 합작했다. 이들이 러시아 득점(20골)의 60%를 책임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케르자코프는 대표팀 비중 축소뿐 아니라 2014년 프로축구에서 7경기 2골 1도움에 그쳤다. 90분당 공격포인트는 0.80으로 준수하나 경기당 48.1분만 소화할 정도로 소속팀에서도 핵심 전력과는 거리가 있었다.
지난 20일 '스포르트복스'의 러시아 베스트 11 예상에서도 '폭발력을 잃은'이라는 수식어로 표현된 케르자코프가 슬로바키아전에서 건재를 과시하고 자신이 없는 상황에서의 경기력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1991년 7월 1일 AC 밀란(이탈리아) 감독으로 부임한 카펠로를 수석코치로 만난 인연으로 카펠로를 지금까지 보좌하고 있는 이탈로 갈비아티(77·이탈리아)는 2007년 12월 14일 영국 국영방송 BBC와의 인터뷰에서 9살 연하의 상관을 '나쁜 경찰'이라고 묘사했다.
카펠로는 잉글랜드대표팀 감독으로 유럽선수권 예선과 2011년 A매치 무패라는 호성적을 거두고 있었음에도 수비수 존 테리(34·첼시 FC)의 주장 해임을 놓고 잉글랜드 축구협회와 갈등 끝에 유럽선수권 본선 1차전을 고작 125일 앞둔 2012년 2월 8일 사임한 바 있다.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재직한 2006/07시즌에는 미드필더 데이비드 베컴(39·잉글랜드)과 공격수 호나우두(38·브라질), 안토니오 카사노(32·파르마 FC)와 불편한 관계이기도 했다.
물론 레알 시절 베컴과 오해를 풀고 이에 베컴은 후반기 맹활약으로 화답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한 훈훈한 사례도 없진 않다. 이번에도 케르자코프의 비판에 수긍하는 답을 한 카펠로가 예선 같은 중용은 아니라도 슬로바키아전처럼 득점을 요구하는 비장의 교체카드로 케르자코프를 적절히 활용하는 긍정적인 결과가 도출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