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납 태평양전쟁희생자 유족회 대외협력위원장·공보위원장

태평양전쟁 피해자는 7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미신고 등으로 현재 신원이 파악된 것은 22만건이고, 전쟁위안부로 끌려가 꽃다운 청춘을 망쳐버린 피해자만도 234명이 신고, 등록되어 있다. 이미 상당수 위안부가 일본 정부의 사과나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한국 정부에 약 6억달러를 유·무상 제공하는 것으로 모든 인적·물적 피해 보상을 마무리했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생존해 있는 전쟁위안부뿐만 아니라 징용·징병으로 인해 피해를 겪은 피해 당사자들은 개인에 대한 피해 보상은 현재까지 한 푼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50년 넘게 일본 정부에 개인에 대한 피해 보상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태평양전쟁 피해 희생자들 다수가 모여 단체를 결성하거나 개인적인 자격으로 일본 정부에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고, 당시 전범 기업에도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꾸준히 집요하게 제기해 왔다. 지난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은 일본 각료로는 처음으로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일본군과 군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또 최근에는 위안부를 포함해 피해 당사자들이 이들 전범 기업에 대한 소송을 제기해 보상 판결을 받아낸 바 있듯 전쟁 피해 보상 책임은 세월이 가도 피해자가 흔쾌히 동의하지 않는 이상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고 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는데 대일(對日) 보상 청구 주체가 되는 희생자들과 유족회의 분열과 갈등도 심화되어 일본에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단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대표 단체나 통일된 목소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 관련 단체가 40여개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단체의 대표자들이 모두 희생 당사자이거나 유족 회원들인 것만은 분명해 보이지만, 수십개의 단체가 난립해 개별적으로 대일 보상 청구 소송에 나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대일 보상 청구소송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40여개 대표자들이 강력하고 통합된 단체로 거듭나야 한다. 유족 사회가 분열되어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중구난방식으로 대일 보상 청구소송을 전개하게 되면 좋아할 곳은 일본뿐이며 대일 보상은 그만큼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