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세월호 사고 수습 구상을 담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며 사과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해양경찰청을 해체해 수사정보 기능은 경찰청으로, 해양구조·구난과 경비 기능은 신설되는 국가안전처로 각각 이관하겠다고 밝혔다. 안전행정부의 안전 기능은 국가안전처로, 인사·조직은 총리 산하에 신설할 행정혁신처에 각각 넘기고 안행부는 행정자치 업무만 맡도록 했다. 해양수산부는 해양교통관제센터를 국가안전처로 내주고 해양산업 육성과 수산정책에만 전념하도록 했다.

해경은 세월호 침몰 당시 수백 명의 승객들이 갇혀 있는데도 배 안으로 뛰어들지 못했다. 피해를 키웠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해경은 그동안 점검 사항이 32개나 되는 배 한 척의 안전 점검을 평균 13분 만에 끝낼 정도로 선박의 안전을 소홀히 다뤄왔다. 10년 전에 비해 인력과 예산을 두 배 이상 키웠으면서도 경무관급 이상 간부 14명 중 1000t급 이상 경비함 함장을 지낸 간부는 단 한 명도 없다. 해상 근무 경험이 전혀 없거나 있어도 몇 달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해상 안전·구난 업무를 제대로 알 턱이 없다. 조직 해체라는 충격 요법이 해양 안전 행정을 새롭게 자리 잡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정부는 '국민 안전'을 모토로 내걸고 이전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개편했다. 그러나 장관과 1·2차관을 비롯해 안행부의 1급 이상 가운데 안전·재난 대응 전문가는 한 사람도 없다. 대통령 발표대로 개편이 이뤄지면 기존 안행부 조직 가운데 3분의 1 정도밖에 남지 않게 된다. 해수부도 수산정책과 해양산업을 육성하는 업무만을 맡게 된다. 두 부처 모두 사실상 청(廳)급으로 격하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이날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을 위해 퇴직 공직자의 취업 제한 대상 기관을 지금보다 세 배 늘리겠다고 했다. 공무원 선발에서 고시(考試) 비중은 낮추고 민간 전문가 채용은 늘려 5대5 비율이 되도록 하고, 장기적으로는 고시 제도의 폐지를 추진키로 했다.

관청은 업계의 편법과 불법에 눈감고 업계는 그런 관청 퇴직자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유착 관계가 세월호 사고의 뿌리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런 '관피아'를 뿌리뽑는 것은 대한민국을 안전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해내야 하는 국가적 과제이다. 재취업 '제한'을 강화할 게 아니라 아예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그러나 '관피아'를 뽑아낸 자리에 정치권 등에서 또 다른 불량 낙하산들이 내려앉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공무원들이 금세 다른 편법과 우회로를 찾아낼 수도 있다.

관료 개혁의 시발점으로 공직을 민간인들에게 더 많이 열겠다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대기업에 못 미치는 공무원 급여 실태, 폐쇄적이고 집단 이기적인 공무원 사회 분위기 등을 감안할 때 과연 능력 있는 민간 전문가들이 공직에 지원할지 미지수다. 입법 과정에서 이런 문제점들에 대한 보완책이 강구돼야 한다.

박 대통령은 안전사고를 일으킨 기업에 최대한 배상 책임을 묻기 위해 기업주 재산뿐 아니라 가족과 제3자에게 숨겨놓은 재산까지 환수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겠다고 했다. 대형 인명 사고를 낸 사람에 대해서도 외국처럼 형을 합산해 수백 년의 징역형(刑)을 선고할 수 있도록 형법을 개정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이런 엄벌(嚴罰)주의 구상은 지금의 국민 감정이나 법 정의(正義) 구현의 측면에서 일부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여러 죄를 함께 지었을 때 가장 법정형이 무거운 죄를 기준으로 삼아 가중 처벌하는 현행 형법의 형량 결정 틀을 바꿔야 하는 문제가 있다. 입법 과정에서 다른 형사법 규정과의 충돌 가능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공직 사회가 이런 조치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공직자가 내심으로는 이번 대통령의 제안이 실제 필요한 조치보다 지나친 과잉 대응이라고 판단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그렇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공직 내부에서 저항에 가까운 움직임이 나타날 수도 있다. 노태우 정부는 항만청 폐지 등을 추진하다 당시 경제기획원·내무부·건설부 공무원들의 집단 저항으로 포기했다. 김대중 정부가 해수부를 없애려고 할 때도 해수부 관료들은 산하 단체들을 움직여 연일 폐지 반대 건의문을 내게 만들고,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해수부 폐지 반대 로비를 전개했다. 대통령이 여론을 동력 삼아 밀어붙이더라도 공직 사회를 설득하는 노력도 함께 하지 않는 한, 지금 예상할 수 없는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박 대통령 제안의 대부분은 국회에서 법을 새로 만들거나 고쳐야 가능한 일들이다. 각종 저항 움직임도 국회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 때문에 무엇보다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필요하다면 대통령이 직접 야당 대표를 만나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 대통령 제안은 정부 수립부터 존재했던 정부 조직을 해체하는 파격적 내용이다. 우리 사회가 언제까지 이런 충격적 사고와 충격적 대응을 되풀이해야 하는가.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 되도록 모두가 각오를 새롭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통령이 눈물로 사과를 했고 종합적인 안전 대책도 내놓았다. 마지막 한 명의 희생자까지 찾는 노력을 계속하면서도, 일반 국민들의 일상 생활은 이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강구할 때가 됐다.

[[사설] 성추행 경찰에게 '밤길 여성 안심 歸家' 맡기다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