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습니다. 여기까지 들을게요."
신나게 연주하던 밴드 멤버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쉴 틈을 주지 않고 물었다. "자작곡 없어요?" 3초 정도 머뭇거리던 보컬이 대답했다. "있는데, 준비를 못 해서…." 사정없이 점수를 매겼다. '창의성 F.' "수고하셨습니다." 주섬주섬 악기를 챙기는 베이스 주자의 어깨가 축 처졌다. 곧바로 외쳤다. "다음 분 들어오세요."
신랄한 독설은 없어도 오디션은 냉혹했다. 지난 10일 대구에서 열린 케이블 엠넷의 '슈퍼스타K' 시즌6 2차 예선 현장. 기자가 이날 이 프로그램의 1일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결과는 TV를 볼 때처럼 60초(중간 광고 시간) 기다릴 것 없이 바로 공개된다.
◇"뭐든지 하나만 잘해라"
15세 남자 중학생 참가자는 임재범의 '너를 위해'를 부르겠다고 했다. '여자들이 노래방에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노래' 1위인 곡이다. 그런데 긴장했는지 가사를 잊어버렸다. 스마트폰으로 가사를 찾아 건넸다. 노래를 시작했지만, 임재범을 흉내 낸 거친 발성의 고음이 튀어나왔다. 음정이 다 틀렸다. 옆을 흘긋 보니 다른 심사위원이 가창력·창의성·발전가능성·매력 등 4가지 평가 항목 모두 F를 줬다.
뒤이어 17세 여고생이 들어왔다. 하얀 피부에 쌍꺼풀 있는 눈이 예쁘장했다.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를 불렀다. 음색이 맑았다. 가창력에 'B'를 주고 옆을 보니 다른 심사위원도 같은 점수를 줬다. 지원서에 '개그우먼 안영미 흉내 내기'가 개인기라고 쓰여 있다. 시켜봤다. 1초 만에 "똑바로 해 이것들아!"라는 유행어가 튀어나온다. 심사위원 모두 '빵 터졌다'. 기자는 'D'라 썼던 매력 항목을 'B'로 고쳤다. 시즌6 총연출을 맡은 김무현 PD는 "2차 예선에선 가창력이든, 춤이든, 개인기든 무엇이든 하나만 강렬한 게 있으면 뽑힐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밴드 심사는 '불가능'
밴드의 경우는 현장에서 제대로 된 심사가 불가능했다. 일렉 기타 등 강한 악기 소리에 묻혀 보컬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통기타, 잼베(손으로 치는 북) 같은 악기로 단출한 사운드를 내는 팀이 유리했다. 실용음악과 학생들로 이뤄진 5인조 재즈 밴드가 들어왔다. 단발머리에 눈웃음을 짓는 여자 보컬의 노래는 역시 들리지 않았지만, 매력 항목에 'A'를 줬다. 트렌치코트를 입은 색소폰 주자는 열정적인 애드립 연주를 들려줬다. 지원서에 이름이 '에릭 킴'이라고 적혀 있지만 미국에서 살아본 적은 없다고 한다. 슈스케 이지은 메인 작가는 "보컬은 현장에서 따로 녹음해 나중에 다시 심사하기 때문에 여기선 주로 매력 위주로 본다"고 말했다.
◇성공의 관건은 '원석(原石) 찾기'
오디션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는 스타성을 갖춘 참가자를 발굴하는 데 달렸다. 슈스케 시즌5는 그런 참가자를 발굴하지 못해 흥행에 실패했다. 시즌6 제작진은 이전에 가지 않았던 경남 창원 같은 도시까지 찾아가 오디션을 연다. 그만큼 '원석'을 찾아내는 일이 절박하다는 뜻이다.
심사한 지 1시간 넘자 집중력이 떨어졌다. '대구엔 원석의 씨가 말랐구나'라고 생각할 무렵 통통한 몸매의 20대 남성이 들어왔다. "은행에서 청원경찰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준비해온 곡은 포맨의 'Baby baby.' 폭발적인 성량에 고음이 쭉 뻗는, '돌직구' 같은 목소리였다. 가창력은 'A'. 지원서에 슈스케 시즌3부터 쭉 참가했다고 적혀 있었다. "꾸준히 도전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막힘없이 대답했다.
"정확히 설명은 못 하겠는데, 저도 모르게 계속 이쪽(노래)으로 눈길이 가요. 음악을 배운 적은 없지만, 잘 해보고 싶습니다. 떨어져도 또 올 겁니다."
이 청년이 6번째 슈퍼스타K가 될 수 있을까. 결과는 6개월 뒤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