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엄마가 한 시간에 열두 번씩 전화를 해요. 빨리 우리 애가 나와야 하는데…."

지난 8일 밤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모인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 나오지 않는 아이를 기다리던 한 실종 학생의 아버지가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9일 오전에도 그는 혼자였다. 사고 첫날엔 온 가족이 함께 내려왔지만, 지금은 그 혼자 체육관 한쪽을 지키고 있다. "20일째 되니까 애들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움직이질 못하더라고요. '우리 ○○이 나왔다는 소식 들리면 1초도 미적거리지 않고 전화하겠다'고 약속하고 먼저 안산으로 올려 보냈어요." 무표정한 그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어버이날인 지난 8일 오전 진도 팽목항 선착장에서 한 실종자 가족이 사고 해역을 향해 “아들아, 카네이션 달아줘야지. 돌아와”라고 외치고 있다. 실종자 수색이 길어지면서 몸져눕게 된 어머니들이 안산으로 많이 돌아가, 실종자 아버지 혼자 팽목항을 지키는 일이 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24일째인 9일, 진도 체육관과 팽목항에는 60여 명의 실종자 가족이 머물고 있다. 사고 초기에는 곳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함께 우는 엄마들이 많았다. 하지만 수색이 장기화하면서 정신을 잃거나 몸져누운 엄마들이 많아지자 다른 가족들이 엄마들을 일단 안산으로 데려갔다. 이제 남은 자리를 지키는 사람은 '아빠 혼자'인 경우가 많다.

9일 오전 팽목항 방파제 옆에는 중년 남성 3명이 쪼그려 앉았다. 띄엄띄엄 물가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이들은 일어섰다가, 뒷짐을 지고 걸었다가, 노란 리본을 만지작거렸다가,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이곳엔 눈물을 흘리며 아이 이름을 크게 부르는 엄마들이 훨씬 많았다. 이제 이 자리에 남은 아빠들은 입을 꾹 다물고 묵묵히 바다를 바라보기만 한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지만, 곧 고개를 젖히고 한참 동안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빠들은 아내와 남은 아이를 안산으로 보낸 뒤엔 바지선으로 향하는 배에 자주 탄다. "여기 있으면 답답해서 살 수가 없어요. 직접 내 눈으로 구조가 되고 있는지 아닌지 봐야지." 이날 바지선에서 돌아온 한 실종 학생 아버지가 말했다. 그는 "애 엄마는 몸이 안 좋아 바지선까지 갔다 올 수가 없다"며 "나라도 바다에 나가서 '아빠 왔다. 엄마도 기다리고 있다. 빨리 돌아오너라'라고 몇 번이고 속으로 기도하고 온다"고 했다.

온종일 서로 한두 마디 정도만 주고받던 아빠들은 팽목항 방파제에 어둠이 내리면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6일에도 아빠 넷이서 바닷바람에 차갑게 식은 몸을 소주 1병으로 녹였다. "우리 아들은 키가 182㎝야. 키 크고 잘생겨서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그렇게 많더라고." 한 아빠가 아들 자랑을 시작하자 너나없이 얘기를 풀어놓는다. "우리 아들도 마찬가지야. 또 나한텐 딸같이 얼마나 살갑게 구는데." "우리 애는 배 타는 사진 찍어 보내고 그랬어. 계속 '걱정하지 마세요'라면서 날 안심시키더라니까." 한참을 얘기하던 아빠들은 바싹 마른 입술을 소주로 적시고는 또다시 기다림을 시작했다.

같은 시각 체육관에도 아빠들이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누워 잠을 자는 이들을 배려한 듯,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 한 실종 학생 아버지는 "짐 싸서 나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며 "어차피 거의 마지막까지 남았으니, 시신을 찾을 때까진 절대로 진도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아버지가 "이럴 땐 아빠가 든든하게 버텨줘야 해. 그래야 다른 가족들도 버틸 수가 있어"라며 의지를 다졌다.

8일 오후 7시쯤 팽목항 가족대책본부 천막에서 수색 상황 브리핑이 있을 때, 아빠들은 엄마들을 대신해 입을 열었다. 해경 관계자가 "아이들이 있을 만한 곳은 다 가봤지만 더는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다. 가봤던 곳도 다시 한 번 수색하겠다"고 설명하자 한 아버지가 "제발, 몇 명 안 남았다고 수색을 중단하지 마시고 끝까지 해주세요"라고 정중하게 당부했다. "고생이 많으시지요. 그래도 부탁합니다. 갔던 데도 한 번만 더 가주시고, 안 가봤던 곳에도 꼭 가봐 주시고…." 그가 눈물을 삼키느라 말을 더 잇지 못하자, 다른 아빠들은 천장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