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 이후 단편을 마감하지 못했다. 소설이라면 단 한 줄도 쓸 수가 없었다. 써놓은 문장이 죄다 잘못 찍힌 사진처럼 초점이 나가거나 뒤틀려 보였으니 말을 말자.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우연히 보게 된 다큐멘터리 속 잠수사가 진도 팽목항 부근에서 "사망자를 수습하러 가는 게 아닙니다. 생존자를 구조하러 들어가는 거예요. 저희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고 말했을 때 그치지 못할 울음이 터져 나왔으니 어딘가 망가진 건 분명했다.
작업실로 돌아가 편집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원고를 쓰지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더니 그 역시 난감해했다. 물론 그의 입에서 "이런 시절에 제정신으로 글을 쓴다는 게 불가능한 일 아닌가"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냉정을 되찾은 편집자는 마감을 일주일 후로 미루어 주겠다고 말했다. "포기하지 마시고, 기운 내세요"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것이 마감 직전 미쳐가는 작가를 상대해야 하는 편집자의 일이었다.
그날 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다시 읽었다. 단편이 너무 안 써지면 다른 작가의 단편을 읽어볼 때가 간혹 있지만 이번엔 꼭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그에게 열광하는 수많은 작가와는 달리 나는 딱히 레이먼드 카버를 좋아하진 않는다. '뚱보'나 '대성당' 같은 몇몇 소설을 제외하곤 카버의 감성이 내겐 크게 와 닿지 않았다.
그런데 토요일 저녁, 어린 아들의 생일 케이크를 예약하려고 쇼핑센터의 빵집에 들른 여자(앤)의 목소리에 대한 묘사가 귓가에서 들려오는 듯하자 나는 이 소설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무뚝뚝한 빵집 주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들의 케이크를 예약하고 그곳을 천천히 걸어 나오는 여자의 모습을 주시하면서 말이다.
레이먼드 카버는 미국 오리건주(州) 크레츠카니에서 태어나 워싱턴주 포트 앤젤레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병원 수위와 도서관 사서, 제재소 목공 등을 전전했다. 열아홉에 결혼해 스물한 살에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으며, 결국 파탄 난 부부 관계를 수습하지 못하고 이혼했다. 그는 두 번 파산했다. 알코올중독까지 겹친 힘든 삶이었다. 그에게 작가란 '밥벌이'를 위해 전쟁처럼 치러내야 하는 삶 자체였다.
그는 오십이 되기도 전에 암으로 죽었다. 그의 작품 속 미국인의 삶이 어떠했을지는 그의 일생이 말해준다. 레이먼드 카버는 "작가의 모든 작품엔 자서전적인 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소설은 미국 어느 소도시에서 벌어질 법한 얘기였고, 사실 그것은 서울 어느 동네에서 벌어져도 벌어질 비극이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엔 그의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부부'가 등장한다.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이들의 삶이 금 가기 시작한다. 아이는 차에 치이고도 멀쩡히 걸어 들어와 졸린다며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외상 없이 평온해 보이는 아이의 감긴 눈은 끝내 떠지지 않는다. 의사 역시 며칠째 눈을 감고 있는 아이를 보며 "그저 잠들었을 뿐이며, 곧 깨어날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아이는 끝내 눈을 뜨지 못한 채 세상을 뜬다.
텅 빈 집으로 돌아온 부부에게 괴상한 남자의 전화가 빗발친다. 문제의 남자는 며칠 전 케이크를 맞추러 간 빵집 주인이었다. 아들이 죽었는데, "왜 생일 케이크를 찾으러 오지 않느냐"며 화를 내는 이 빵집 주인을 여자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부부는 절망감 속에서 빵집을 향해 돌진한다. 아무것도 몰랐던 주인은 여자의 얘길 듣다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진심을 다해 용서를 구한다.
"'내가 갓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그가 말했다. 그는 오븐에서 따뜻한 계피 롤빵을 가져왔는데 갓 구운 빵이라 겉에 입힌 설탕이 아직 굳지도 않았다.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된다오. 더 있소. 다 드시오. 먹고 싶은 만큼 드시오. 세상의 모든 롤빵이 다 여기에 있으니.'"
나는 이 장면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다.
"앤은 갑자기 허기를 느꼈는데, 그 롤빵은 따뜻하고 달콤했다. 그녀는 롤빵을 세 개나 먹어 빵집 주인을 기쁘게 했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빵집 주인이 외로움에 대해서, 중년을 지나면서 자신에게 찾아온 회한과 무력감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들에게 그런 시절을 아이 없이 보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 말했다. 매일 오븐을 가득 채웠다가 다시 비워내는 일을 반복하며 보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
그가 수없이 만들었던 파티를 위한 음식, 축하 케이크, 손가락이 푹 잠길 만큼의 설탕, 케이크에 세워두는 작은 신혼부부 인형들. 몇 백, 아니, 지금까지 몇 천에 달할 것들. 생일들. 그 많은 촛불이 타오르는 것을 상상해보라. 그는 반드시 필요한 일을 했다. 그는 빵집 주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꽃 장수가 아니라 좋았다. 사람들이 먹을 것을 만드는 게 더 좋았다. 언제라도 빵 냄새는 꽃향기보다 더 좋았다."
스무 살 때 나는 교통사고로 친구를 잃었다. 장례식장에서 넋이 나간 얼굴로 몇 시간이고 앉아 있었는데 누군가 내게 와서 뭐라도 먹는 게 좋겠다는 말을 했다. 나는 식사를 거부하다가 결국 간청을 못 이겨 구석에 앉아 국물을 입안에 넣었다. 그리고 울어서 부어터진 얼굴로 국밥 한 그릇을 다 먹어치웠다. 그때의 당혹스러움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는데도 나는 밥을 먹을 수가 있었다. 누군가의 죽음 곁에서 살겠다고 퍼 넣는 국물이 끔찍했지만 그것이 동시에 맛있고 따뜻하다 생각했다.
스무 살의 나는 아마도 그때, 처음으로 어렴풋이 '죽음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나와 마찬가지로 카버의 소설 속 젊은 부부는 빵집 주인이 건네 준 롤빵을 통해 아들의 죽음을 이해한다. 빵을 뜯어 먹는 그 장면은 일종의 영성체 의식처럼 읽혔다. 이 소설은 내가 읽은 카버의 소설 중 가장 따뜻했다.
"산 사람은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말은 나의 할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이었다. 전쟁 통에 자식을 잃고, 병으로 죽은 자식이 여럿인 사람의 말엔 맹독 같은 가시가 박혀 있어서, 나는 그 말의 진의를 알기도 전에 목구멍으로 꿀떡 넘겨 버리곤 했다. 그런데 식당에 앉아 혼자 밥을 먹다가 식당 주인이 틀어놓은 다큐멘터리 속 자원봉사자가 희생자 가족들에게 밥을 실어 나르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못 먹는 사람을 어떻게든 먹여야 한다는 간절함이, 너무 빨리 찾아온 초여름 날씨에도 그들을 이리저리 뛰게 만들고 있었다. 눈물에 맨밥을 말아 먹는 기분이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 '대성당'에 실린 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