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 물리반도체과학부 연구원들이 기초과학연구센터(SRC)에서 실험을 하며 대화하고 있다.

올해로 108년을 맞는 동국대학교의 역사는 조선의 민족 각성 운동에서 비롯됐다. 1906년 명진학교를 모태로 1915년 중앙학림, 1940년 혜화전문학교를 거쳐 지금의 동국대학교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19세기 말 세계 열강 세력 다툼 가운데 나라의 운명이 위태롭던 조선에서 불교계 인사들은 민족 활로를 교육에서 찾고, 근대식 학교를 설립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를 위해 1906년 원흥사에 불교연구회가 조직됐고, 전국 사찰의 대표들이 모여 전문학교 수준의 불교 학교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렇게 전국의 사찰이 기금을 출자했고, 그해 2월 19일 구한말 행정 관서인 내부(內部)로부터 정식 학교 설립을 인가 받았다. 이것이 명진학교의 시작이다. 학교 이름 '명진(明進)'은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힌다'는 대학(大學) 총설편의 뜻과, 늘 부지런히 나아간다는 '정진(精進)'의 정신을 더한 것이다. 교훈은 '자비수선(慈悲修善)'으로 정했고,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에 있던 원흥사를 학교 건물로 썼다. 교수진은 윤치호·서광범·어윤중·김우담 등 당시 신학문계의 명사들로 꾸려졌고, 이민설·이능화·장지연 등 쟁쟁한 인사들이 강사진으로 참여해 최고 수준의 교육을 펼쳐갔다. 1915년 정식 인가를 받아 혜화동에 설립된 중앙학림은 본과와 예과를 두고 기숙사와 보건소를 갖춰 본격적인 고등교육의 문을 열었다. 1919년 3·1운동 때 앞장서 독립을 외친 만해 한용운은 중앙학림의 강사였고, 중앙학림 학생들은 독립선언서 1만장을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 배포했다. 이처럼 항일 운동에 적극적이었던 중앙학림을 일제는 인가 불허라는 방법으로 강제 폐교했지만, 학생들은 방학 때마다 영남·호남·관북 지방에서 민족 계몽운동을 펼쳐 큰 호응을 받았다. 드디어 1930년 중앙불교전문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고, 그때 제정된 '신실·자애·섭심·도세'의 정신은 지금까지 이어져 동국대의 교훈으로 자리 잡았다. 1940년엔 학교명이 혜화전문학교로 바뀌었고, 당시 연희전문·보성전문과 함께 민족 진영의 3대 고등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은 이래 오늘날의 동국대로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