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발생한 열차 추돌 사고는 뒤따르던 차량이 급히 멈춰 서다가 발생했다. 일반 자동차 운전과 달리, 지하철 차량 운행엔 종합 관제실이 있고, 추돌이 우려되면 열차를 자동으로 멈추게 하는 자동 열차 정지(ATS) 장치까지 있다. 정수영 서울메트로 운영본부장은 "정상적 상황이라면 ATS가 작동해 추돌을 막았어야 한다"며 "장치가 정상 작동했는지, 이상이 있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①ATS 고장 났나

ATS는 선로의 신호 시스템과 연동해 앞에 다른 열차가 있으면 열차를 자동으로 멈추게 한다. 이 때문에 이 장치가 왜 이번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를 밝히는 것이 사고 원인을 밝히는 열쇠다.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2호선에서 운행되는 모든 열차에는 이 장치가 달려있다.

지하철 추돌 사고가 발생한 서울 상왕십리역에서 서울메트로와 소방 당국 관계자들이 현장을 둘러보며 사고 원인을 논의하고 있고, 반대편 선로의 객차에 탄 승객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사고 당시 충격으로 앞뒤 열차 유리창이 모두 깨졌다.

서울메트로 정수영 본부장은 브리핑에서 "사고가 난 선로가 곡선이어서 ATS가 앞에 선 열차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작동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매일 열차가 운행되는 곡선 주로에서 하필이면 왜 이번에만 ATS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설명으로는 석연치 않다. 이에 전문가들은 사고 열차의 ATS가 아예 고장이 났거나, 정기적인 점검이나 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건 아닌지도 점검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철도기술연구원 관계자는 "서울메트로는 기존 ATS 장치를 업그레이드시키는 중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오류가 생겼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구본우 서울메트로 기술본부장은 "이 장비(ATS)를 마지막으로 정비·보수한 것은 2011년"이라고 밝혔다.

②신호 시스템 '먹통' 됐나

철도 전문가들은 신호 시스템이 고장 나 사고가 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선로의 신호 시스템이 고장 나면 열차에 장착된 ATS가 아무리 정상 작동하더라도 선로 앞 상황을 잘못 파악할 수밖에 없다.

코레일 관계자는 "추돌 피해가 큰 것을 보면 상왕십리역 안에 열차가 멈춰 서 있다는 사실을 아예 몰랐던 것 같다"며 "신호 시스템에 (앞에 열차가 없다는 의미의) '녹색' 신호가 떴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메트로 측은 언론 브리핑에서 "기관사가 처음에 녹색 신호가 떴다가 갑자기 빨간색 신호가 켜져 급정거를 했으나 늦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한 철도 전문가는 "상왕십리역 신호 시스템이 전체적으로 먹통이 돼 두 열차 모두 이상(異常) 운행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종합 관제실의 부실이 이번 사고를 불렀다는 지적도 있다. 관제사가 앞 열차가 멈춰 서 있는 상황을 뒤따르는 열차에 미리 알렸다면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란 얘기다.

③기관사 과실은 없나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이번에 사고가 난 열차는 자동 열차 운행(ATO) 장치가 달려 있지 않아 기관사가 직접 속도를 높이거나 줄이는 등 수동으로 조작해야 한다. 한 철도 전문가는 "커브 구간에서는 곡선 반경에 따라 속도 제한이 있기 때문에, 이를 준수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메트로는 브리핑에서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했는지 등에 대해 조사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 "기관사가 병원에 있는 상황이라 자세한 것은 추가 조사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추돌 사고.

일부에서는 기관사가 ATS를 끄고 운행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한 철도 전문가는 "시스템 오류가 있어 기관사가 아예 ATS를 꺼놨을 가능성도 있다"며 "작년 8월에 발생한 대구역 열차 탈선·충돌 사고 때도 사고를 낸 무궁화호는 ATS를 꺼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④폐차 직전 노후 차량

이번에 앞차를 들이받은 열차는 1990년에 도입돼 25년째 달린 노후 차량이다. 철도안전법상 지하철 열차는 원래 25년까지 쓸 수 있고, 정밀 안전 진단을 통과하면 15년 연장해서 쓸 수 있다. 철도기술연구원 왕종배 책임연구원은 "아직 내구연한은 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20년이 넘으면 어디서 돌발적인 고장이 생길지 모른다"며 "최근 들어 지하철 고장이 부쩍 잦아진 것도 이런 데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ATS(Automatic Train Stop·자동 열차 정지) 장치

자동으로 열차와 열차 사이가 200m 정도 안전거리를 유지하도록 하는 장치. 만약 신호 장치에 적신호가 들어왔는데 기관사가 멈추지 않으면 이 장치가 작동해 버저를 울려 상황을 알리고, 자동으로 열차를 세운다. 지하철 2호선 모든 전동차에는 이 장치가 있어 자동으로 작동한다.

☞ATO(Automatic Train Operation ·자동 열차 운행) 장치

기관사가 특별한 조작을 하지 않아도 열차가 자동으로 운행될 수 있도록 하는 장치. 지하철 2호선의 신형 전동차에는 이 장치가 달렸지만, 이번에 사고 난 구형 전동차에는 이 장치가 없어 기관사가 수동으로 속도를 내거나 줄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