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의 여진(餘震)이 깊다. 마음이 녹아내린 사망자와 실종자 가족들의 절규가 하늘을 찌른다. 찬란한 신록(新綠)의 탄생과 젊은 생명들의 참혹한 소멸이 엇갈려 살아있는 자들의 가슴을 찢는다. 그러나 우리는 황망함과 참담함 속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다. 고통과 슬픔의 바다를 헤쳐 나와야만 한다.
'재난(disaster)'은 '별(astro)'이 '없는(dis)' 상태를 가리킨다. 그렇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는 우리의 항로를 인도할 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삶의 기본과 규범이 무시되며 희망과 꿈이 사치스럽게 여겨질 정도로 황폐하다. 맹골수로에 잠긴 세월호는 '재난 디스토피아(Dystopia)' 대한민국호(號)의 축소판이다. 가라앉는 배와 승객들을 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 예술가·종교 지도자인 척하면서 온갖 협잡질을 일삼은 선주(船主), 그런 선주와 결탁해 공적 자산을 분탕질 친 관료 마피아들이 활개치는 곳이다.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어디에도 기댈 데가 없어 각자도생(各自圖生)이 판치는 한 편의 지옥도(地獄圖)나 다름없다. 이런 사회에서 자살률이 세계 최고인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세월호에 재난(災難) 디스토피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선장과 선원들이 비루하게 도망칠 때 새내기 승무원 박지영씨와 단원고 남윤철 선생님은 승객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렸다. 해경조차 진입할 엄두를 못 낸 기울어가는 세월호 안에서 20여명을 죽음의 문턱에서 삶으로 끌어올린 김동수씨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목숨을 걸고 구조작업 중인 잠수사 500여명과 전국에서 달려온 자원봉사자 1만5000명이 진도 팽목항을 메우고 있다.
방방곡곡을 수놓은 노란 리본의 물결은 5월의 꽃보다 아름답다. 미증유의 재난 상황에서 숭고한 공동체 의식과 연대감이 분출해 우정의 공동체를 이루는 '재난 유토피아'가 출현한 것이다. 재난 유토피아가 모습을 드러내면 사람들은 언행을 절제하기 시작한다. 남을 배려하고 자신의 일상을 돌아본다. 재난 유토피아는 이처럼 자기성찰에서 시작한다. 대규모의 재난은 충격요법으로 사람들의 습관적 행동양식을 반성케 하고 변화하게 한다. 일상에 깊이 자리 잡은 부패와 부조리에 눈을 뜨게 만든다.
노란 리본에 가장 많이 새겨진 말은 '미안하다' '부끄럽다'이다. 어른의 말을 믿은 학생들을 사지(死地)에 내팽개쳤으므로 미안하다는 것이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고 기본을 소홀히 했으니 부끄럽다는 고백이다. 매뉴얼이 없어서가 아니라 매뉴얼을 실천할 시민 의식의 부재가 참담하다는 반성의 목소리다. 여기에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국가의 무능과 기득권층의 부패에 대한 분노가 더해져 재난 유토피아를 추동한다.
재난 유토피아를 창출한 집단적 자기 성찰과 상호 공감은 자연발생적인 '재난 공동체'로 이어진다. 역경에 빠진 타인들을 돕고자 하는 열망이 샘솟는다. 위기의 순간에 사람들은 서로 챙기고 자신보다 공동체를 앞세운다. 삶에서 소중한 작은 것들과 기본적인 것의 가치를 절감한다. 바로 지금,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장관(壯觀) 그대로다. 2007년 태안 앞바다의 유조선 기름 유출 사고 때 전국에서 모여든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으로 자연이 훨씬 빨리 되살아났다. 이른바 '태안의 기적'이다. 1997년 외환 위기 때는 외채를 갚기 위한 전 국민적 금 모으기 운동으로 세계가 놀랐다.
'2014년 진도의 기적'은 '태안의 기적'을 훌쩍 넘어선다. 세월호 참사에 미안해하고 분노하는 거대한 민심(民心)의 파도가 일렁이는 중이다. 세월호의 압도적인 비극성(悲劇性)이 '지옥에서 만들어진 낙원'인 재난 유토피아를 잉태한 것이다. 물론 재난 유토피아는 오래가지 않는다. 재난 디스토피아가 재난 유토피아를 부단히 잠식하기 때문이다. '재난은 사람들을 친구로도, 적으로도 만든다.' 그러나 모두가 친구가 되는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고서 어찌 지금의 디스토피아를 견디겠는가? 희망 없이 이 잔인한 세상을 어찌 건너겠는가?
세월호 이전과 세월호 이후의 우리 사회가 똑같다면 대한민국은 희망 없는 나라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우리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이 땅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야만의 땅이 될 터이다. 희망은 거저 오지 않는다. 희망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처절한 자기 성찰과 변화를 향한 필사적인 노력이 절망의 장벽을 뚫을 때에야 비로소 희망이 생겨난다.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꿈꿀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