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2014.4.29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 일부를 꺼내며 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랐어요. 엄마가 있었으면 사줬을텐데 이걸 못사준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요. 눈빛이 너무 간절해서 사줬죠. 위험하니까 꼭 헬멧 쓰고 타기로 약속했는데…"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故 이모(18)군의 아버지 이모씨는 아들이 그토록 타고 싶어했던 자전거 이야기를 꺼내며 눈물을 보였다.

로드사이클 입문용으로 좋은 거라며 사진까지 보내온 아들, 이씨는 이군과 함께 안산에서 수원까지 직접 가서 중고로 자전거를 사왔다.

수학여행을 다녀오면 자전거로 통학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애지중지 키운 아들은 아빠한테 선물받은 자전거를 한 번도 타보지 못했다.

이씨는 세월호 침몰 사고 소식을 들은 후 즉시 시속 20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달려 3시간 만에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다. 거센 바람과 파도 앞에서 아들의 이름만 불렀다.

사고 후 5일째 되던 날 이군의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애타게 기다리던 생존 소식은 아니었다. 옷 속에서 학생증이 발견됐다. 구명조끼는 입어보지도 못한 상태였다.

차갑게 식어버린 이군의 주검 앞에서 이씨는 한참을 울었다. 차갑고 어두운 물 속에서 고통스러웠는지 이군은 한 쪽 눈을 감지 못했다. 이씨는 좋은 데 가라면서 한 쪽 눈을 마져 감겨줬다.

의사들이 이군의 시신을 함부로 하는 게 싫어 직접 신원확인소로 들어갔다. 이군을 본 순간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군의 목을 젖히고 입술에 바람을 불어 넣었다. 이군의 입에서는 썪은 바닷물이 옆으로 흘러나왔다.

이씨가 받아든 검안 결과서엔 사망원인이 '익사'로 돼 있었다. 이씨는 아들이 수영하다가 죽은 게 아니라며 거칠게 항의했고 정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후 바뀐 건 '세월호 침몰사고로 인한 익사 추정'이었다. 수식어만 추가됐을 뿐 '익사'라는 단어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희생으로만 써야 한다고 수도 없이 외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씨는 "물 속에서 아들이 죽어간 걸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며 "이게 대한민국의 비정한 현실"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29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2014.4.29

안산 화랑유원지에 정부 합동분향소가 설치된 29일, 이씨는 이군의 영정과 위패를 직접 안치했다.

이날 오전 9시 박근혜 대통령도 합동분향소를 찾아 희생자들을 조문했다.

박 대통령이 유족들을 만나기 위해 가까이 다가오자 이씨는 박 대통령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동안에 쌓아뒀던 울분을 토해냈다.

먼 바다에서 죽어가는 아들을 구하지 못한 아버지의 나약함에 대한 한맺힌 절규였다.

이씨는 진도에서 세 번이나 자식의 생사를 포기하라는 무언의 압력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에 대한 수중 수색작업 현장 동영상, 에어포켓 내 최대 생존시간이 최대 72시간이라는 발표, 희생자 시신에 대한 유전자(DNA)검사 등이 그가 말하는 세 가지다.

이씨는 4년전 천안함 침몰 사고 이후 정부의 구조 대책이 달라진 게 없다고 꼬집었다. 팽목항에서 최상환 해양경찰청 차장을 만나 대책 세워놓은 게 있느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없었다.

사고 해역에서 해군의 작업을 지휘하고 있는 김판규 해군 소장에게 "왜 잠수정은 빨리 투입 안하냐"고 물었지만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수수방관하는 구조 당국의 태도에 크게 실망했다. 정부에 대한 믿음은 갈수록 추락했다.

이씨는 아들이 생각날 때마다 아들과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를 꺼내본다. 쭉 대화 내용을 읽어가면 아들이 옆에 있는 것 같아서 좋다. 어느새 이씨의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이군은 표현은 서툴지만 아빠를 사랑하는 착한 아들이었다. 용돈을 벌고자 서빙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으로 아빠에게 옷을 선물하기도 했다.

이씨는 이군이 어느새 철이 들어 아빠 생각을 하는 걸 보며 지금처럼만 착하게 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러브 유 우리 아들' 이라는 아빠의 문자에 '사랑한다'는 말 대신 '저도요'라고 표현하는 수줍음 많은 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빠 학교 다녀올게요'나 '아빠 학교 잘 다녀왔습니다'의 인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이씨는 그저 휴대폰 속 아들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게 요즘의 일상이다.

"저 좀 태워주세요". 이씨는 더는 말할 힘도 없다면서 집으로 향하는 택시에 올라탔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은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씨의 축 처진 두 어깨가 유난히 무거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