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 내 친구 중에 장애인이 없다면 우리는 장애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을 수 있지만, 삶의 순간이 끔직한 사고를 운 좋게 비껴가는 찰나라고 생각하면, 장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다. 그리고 장애는 몸만이 아니라 마음에도 있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 어쩌면 형식적일 수 있는 장애인의 날 특집 드라마가 올해는 남다르게 다가왔다. 「하늘 벽에 오르다」(KBS)는 시각장애를 겪고 있는 여고생 유진과 문제 학생 대안 선도 프로그램으로 스포츠 클라이밍에 참여하게 된 태호가 한 팀이 되어 과제에 도전하는 이야기이다.
“내가 심심해서 클라이밍 하는 줄 알아? 맨날 웃고 다니니까 내가 우스워?” (유진)
“미안해. 잠깐 딴 생각하느라.” (태호)
“앞이 안 보이는데 저위에 매달려 있는 심정이 어떤 지 넌 상상이나 해? 난 저 위에서 말해주지 않으면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구. 누구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이 기분, 정말 드럽고 치사해. 나라고 니 도움 받는 게 좋아서 이러는 것 같어?”(유진)
“뭐 어쩌라구, 넌 올라가잖아, 앞이 안보여도. 누구처럼 집에만 쳐박혀 있진 않잖아. 그럼 된 거 아니야. 오버행이고 지랄이고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 (태호)
“함부로 말하지마. 너한텐 아무 것도 아닌지 몰라도 나한테는, 나한테는 중요해“(유진)
태호의 아버지는 유명한 산악인, 그러나 사고로 장애인이 되어 휠체어에 의존한 채 술로 나날을 지새우고 있었다. 그런 아빠를 보는 태호의 마음은 항상 무거웠다. 반면, 유진은 일반인도 쉽지 않은 클라이밍에 도전하며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었다.
태호는 유진의 길잡이. 암벽 아래에서 유진이 가야할 길을 알려주고, 유진은 줄 하나에 의존한 채 태호의 지시대로 암벽을 타는 것이다. 1%의 의심도 없이 상대에 대한 믿음만으로 만들어가는 합동작전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을 그리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태호가 건성으로 유진에게 길잡이를 하다가 유진이 벽에서 떨어졌다. 유진은 불같이 화를 낸다. 암벽에서 떨어져 아파서가 아니라 믿음의 고리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유진에게 태호의 말 한마디 한 마디는 생명 줄과 다름없다. 그런데 태호가 그 임무를 소홀히 한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위험하지 않을 것임을, 위험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도와줄 사람들이 곁에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다. 볼 수 없을 때 눈이 되어주고, 들을 수 없을 때 귀가 되어주고, 움직일 수 없을 때 발이 되어 주는 사람들이 있음을 우리는 믿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세상, 그런 세상에선 장애란 그저 조금 불편한 것일 뿐이다. 키 큰 사람, 작은 사람이 있듯, 그저 다른 것이다. 그러나 그 믿음이 희미해질 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본 정신을 가지고는, 피를 토하고 죽든지, 물에 빠져 죽든지 하지, 하루라도, 살수가 없단 말이야. 흉격이 막혀서, 못 산단 말이야. 에잇, 가슴이 답답해. ” 소설가 현진건의 의 한 구절이 자꾸만 맴돈다.
◆공희정은?
드라마를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테순이’라 불릴 만큼 텔레비전과 친하게 지냈다. 내 인생 최고의 TV 드라마는 (김수현 작)이고, 라디오 드라마는 김자옥의 이었다. 드라마 속에 세상 진리가 있고, 그 진리를 통해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고 믿는 드라마 열혈 시청자. 지금은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