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이 6·25전쟁에 참전했잖아요. 한국 정부가 매년 참전 용사들을 초청하는데 오면 다들 깜짝 놀라요. '폐허가 됐던 나라가 이렇게 발전했느냐'면서요. 참전 용사 자손들이 유학을 오기도 하는데, 많이들 와서 첨단 기술뿐 아니라 '빨리빨리, 열심히' 일하는 문화도 좀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힐튼 안토니 데니스(Dennis) 주한 남아공 대사는 2010년 대사로 부임할 수 있는 여러 나라를 제안받았는데 한국을 선택했다고 했다. "아시아에서 생활해 보고 싶었던 데다가, 가장 흥미롭고 역동적인 나라였기 때문이죠."

힐튼 안토니 데니스 주한 남아공 대사는 “남아공 중소기업들이 한국의 기술을 많이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데니스 대사는 현재 6·25 참전국 대사 모임인 한국전참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남아공 민주화 이전 시기 인종차별 반대 투쟁단체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가입한 뒤 19세에 망명 갔다가 1991년 귀국했다. ANC에서 군(軍) 업무를 주로 맡았고 귀국 후 국내안보부와 대외안보부에서 차관보까지 지낸 '안보통'이다.

남아공은 1994년 민주화를 이룬 뒤 경제개발에 주력하며 사회 인프라와 교육, 의료 등에 투자해 매년 4~6%의 성장을 이룩했다. 하지만 남아공 정부는 아직 범죄와 빈곤, 실업 등의 문제를 겪고 있어 '2030년까지 굶주리는 사람이 없고, 교육받을 기회가 고루 주어지며, 일자리가 있는 나라'를 목표로 하는 개발 계획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이 해방 17년 뒤인 1962년 경제개발계획을 세웠잖아요. 남아공도 민주화 16년 뒤부터 본격 경제개발에 나섰어요. 당시 한국은 1인당 소득이 70달러에 불과했지만 남아공은 8500달러였으니 발전이 빠를 겁니다. 남아공 농촌개발국과 지방 관리들이 한국에 와서 새마을운동도 배워갔어요."

한국과 남아공의 무역 중 한국의 자동차·전자제품 수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 승용차 및 그 부품 수출액은 8억8300만달러로 전체 수출액의 40%를 차지할 정도다. 그는 "젊은 여성들은 특히 스포티지와 i20를 좋아한다"며 "지난 2월 남아공에 다녀왔는데 공항과 도로 곳곳에 삼성과 현대차 광고가 있어 놀랐다"고 했다.

"서울 삼청동에서 커피 마시며 미술관 구경하는 걸 좋아해요. 가회동에 있는 닭문화관은 남아공에도 하나 만들고 싶어요. 산낙지는 도저히 못 먹겠더라고요. 하하."

데니스 대사는 오는 27일 '남아공 자유의 날 20주년'을 앞두고 분주하다. 1994년 남아공에서 처음으로 인종차별 없이 실시된 민주 선거를 기념하는 날이다. 남아공 대사관은 '남아공 문화의 주간'을 지정, 전통 음악 공연과 영화제 등을 펼칠 계획이다.

민주화 이전 남아공은 소수 백인이 다수를 지배하며 국토를 9~10개 지역으로 나눠 인종별로 거주지를 정했다. 식당이나 학교도 흑인은 갈 수 없는 곳을 정했고 교육·전기·주거·의료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차별했다. 데니스 대사는 "백인만 투표하고 나머지 대다수는 참정권이 없었다"며 "이런 상태를 억압으로 유지하려고 정부 예산의 25%가 치안과 안보에 집중했었다"고 했다.

"이게 한국과 남아공의 공통점이에요. 둘 다 식민 지배를 받고 군부독재를 경험했죠. 하지만 결국 민주 헌법에 기반한 국가를 건설했잖아요. 한국이 통일되면 참고할 점이 많을 겁니다. 서로 관계를 더 깊이 맺어 가야지요."

넬슨 만델라 정부의 통합 정책은 성공적이었다. 그는 "흑인들은 '백인들에게 보복할 수 있겠다'는 앙심을 품은 게 사실인데, 만델라는 이 위기를 지혜로 극복해 세계적 지도자로 인정받았다"며 "유엔(UN)이 그의 생일을 만델라 데이로 기념한 것처럼 우리도 한국에서 '만델라 데이' 행사를 치를 예정"이라고 했다.

"한국에선 아프리카 국가 하면 부패·폭동·내전의 나라를 떠올리잖아요. 민주화 20주년을 계기로 남아공 민주주의를 알리고 싶습니다. 한국도 통일에 대비해 남아공이 민주화 과정에서 다양한 인종을 포용한 사례를 눈여겨보면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