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김대식 교수는 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신임 교수를 뽑을 때 미국 박사에게 우선권을 주는 행태를 이제 그만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동생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함께 우리 학문과 교육 풍토를 비판한 '공부 논쟁'(창비) 출간에 맞춰 열렸다. 김 교수는 "제자를 교수로 만들지 못할 거면 박사과정 학생을 뽑지 말아야 한다" "대학 교수의 국내 박사 비율이 90%는 돼야 한다" 같은 '과격한' 발언을 쏟아냈다. "파라오(미국 학문)의 피라미드를 쌓는 데 노예(한국 학자)가 돌덩이 하나 얹었다고 피라미드를 노예가 만들었다고 할 수 있나"라고도 했다. 이런 도발적 발언은 책에도 가득하다.
김 교수가 글과 말로 한 작심 발언은 우리 근대 학문 도입사(史)에서 변곡점을 이룬 사건으로 훗날 기록될지도 모른다. 한국 최초의 서양 유학생으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귀국해서 1895년 '서유견문(西遊見聞)'을 펴낸 유길준(兪吉濬· 1856~1914)을 근대 학문 도입의 효시(嚆矢)라고 한다면 120년 만의 '학문 독립선언'으로 말이다. 김 교수 자신도 미국 UC버클리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박사 우대에 대한 비판, 학문 종속에 대한 우려는 물론 과거에도 있었다. 1980년대 말 한때 서울대 사회학과의 일부 대학원생은 학문의 식민지화를 극복한다는 이유로 미국 유학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991년 사회학과 신임 교수로 미국 박사가 채용되자 수업을 거부하기도 했다. 문승익 중앙대 교수는 1974년 서구 이론의 맹목적 수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자아준거적 학문'을 주창했다. 그러나 이는 당시 반미(反美) 분위기의 투영이었거나 한국 현실에 맞는 학문 이론의 개발을 주장한 것이지, 한국 학문의 후진성이 학문의 종속 그 자체에서 온다는 전면적 비판은 아니었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려면 동종교배(同種交配)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같은 학부 출신끼리 똘똘 뭉친 엉터리 동종교배 말고 학문적으로 연결된 동종교배"라고 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일본 과학계의 노벨상 수상자 15명 중 13명은 국내 박사 출신이다. 일본은 자기 연구실 박사 중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을 교수로 뽑는다. 이들은 치열한 연구 경쟁을 벌이지만 정교수가 되는 비율은 20% 정도다. 김 교수는 "일본의 학문은 경쟁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정교수들이 이끌어간다. 일본은 국력이나 학문 수준이 세계 10위권 밖에 있었던 20세기 초반에 해외 유학을 중단했다. 일본처럼 학문의 자기 집을 짓는 방식이 옳다고 본다"고 했다.
김대식 교수의 주장이 국내 박사를 역(逆)우대하는 '학문 쿼터제'를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 대학의 박사 배출 시스템이 세계 수준에 걸맞은지도 점검해야 한다. 그러나 해외에서 100년 넘게 선진 학문을 배웠다면 이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학자를 스스로 양성해야 한다는 김 교수의 문제 제기를 우리 학계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