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걸린 설치 작품 정면에 섰다. '와!' 순간 외마디 탄성이 절로 터졌다. 옆에서 볼 땐 20㎝ 두께 틀에 끼운 거울 같던 작품 안에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테두리에 있는 가느다란 네온 조명이 띠 형태로 끊임없이 반복된다. 벽 안으로 족히 10m는 뚫려 있는 듯한 착각이 인다. 거울 미로에서 방향 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작품 안으로 쑥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이반 나바로가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영감 얻어 만든 작품 ‘Burden(짐)’. 네온 조명이 거울에 반사돼 얇은 띠 형태로 수없이 반복되며 벽에 구멍이 깊게 뚫린 듯한 착시 효과를 준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열리고 있는 칠레 작가 이반 나바로(42)의 개인전은 이처럼 빛과 거울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로 실재(實在)와 환영(幻影)을 넘나드는 경험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전시 제목은 '299 792 458 ㎧'. 1초에 2억9979만2458m를 가는 빛의 속도에서 따왔다. 빛은 '희망', '밝음'의 상징이나 나바로의 빛은 어두운 기억에서 건져 올린 보석이다. 나바로는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의 철권통치 아래 자랐다. 일부러 정전(停電)을 일으켜 개인이 빛을 누릴 자유마저 통제했던 그 시절 폭압을 기억하며, 빛을 정면으로 응시해 '사형' '이민' 등 사회성 짙은 주제를 다뤘다. 개성 있는 설치 방식, 묵직한 주제로 젊은 나이에 2009년 베네치아비엔날레 칠레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최근 뉴욕 매디슨스퀘어에서도 전시했다.

작품은 일반 거울과 일방투시거울(앞에서 보면 거울 같지만 반대 방향에서 보면 유리처럼 투명하게 보이는 거울)을 마주 보게 한 다음 그 사이에 얇은 조명을 끼워 만든다. 두 거울에 빛이 반사돼 상이 무한히 맺히면서 깊은 공간감이 표현된다. 예컨대 작품 '트윈타워즈'는 가까이서 보면 100m 정도 되는 마천루가 바닥 안으로 뚫려 있는 것 같다. 전시장엔 서울에서 영감 받은 작품도 있다. 잠실 롯데월드타워의 이미지를 담은 'Burden(짐)'.위에서 건물을 내려다보면 무거운 짐이 들어 축 처진 가방 같다고 이런 제목이 붙었단다. 전시 27일까지. (02)2287-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