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

장기 침체로부터의 탈출이 최대 과제였던 일본이 이번엔 급격한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일본 경제를 15년 물가 하락(디플레이션)의 늪에서 끌어올리려던 아베 신조 총리의 구상이 또 다른 시험대에 올랐다고 14일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아베 행정부는 2015년까지 연평균 2%의 물가 상승률 달성을 목표로 내걸고, 작년 4월부터 일본은행은 무제한 돈풀기 정책에 들어갔다. 아베노믹스(Abenomics·일본 아베 정부의 경제정책)의 시작이었다. 아베 정부가 꾀했던 구도는 ‘양적 완화-수출 활성화-기업 이익 증대-가계 소득 증가-물가 상승·내수 경제 활성화-정부 세수 증가’의 선순환이었다.

올 들어 정부의 압박에 못 이긴 대기업들은 일단 기본급 인상안을 들고 나왔다. 지난달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일본 주요 52개 기업 경영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0%에 해당하는 36개 기업이 올해 기본급을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도요타자동차와 혼다자동차는 각각 2700엔(약 2만8000원), 2200엔을 올리기로 했다. 일본 최대 통신업체인 NTT도 2600엔 인상할 계획이다. 유통업체 세븐&아이홀딩스와 로손, 파나소닉 등 전자제품 업체들도 각각 기본급을 2000엔씩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물가가 너무 빨리 오르게 되는 상황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연봉 인상과 같은 실질 소득의 변화가 본격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물가만 먼저 오를 경우, 가계 소비가 오히려 위축될 것으로 전망한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의 신케 요시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4월 물가 상승률을 3.5%로 예측했다. 월간 상승 폭으로는 지난 1982년 이후 최고치다. 요시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소비세율 인상 효과를 제외하면 물가가 1.8~1.9%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의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가장 큰 요인은 제품 가격 인상이다. 올 초 저가 덮밥 체인점인 요시노야가 가격을 3% 인상하는 등 주요 음식료 업체들이 잇달아 제품 가격을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이달부터 5%에서 8%로 상승한 소비세율도 기업들의 제품 가격 인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주류업체 산토리와 미용실 체인 QB넷은 지난달 가격을 8%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일부 업체들은 소비세 인상율보다 더 큰 폭으로 가격을 올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카페 체인점인 도토루커피는 모든 음료 가격을 10% 올리기로 했다. 이렇게 오른 제품 가격은 소비자들에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시라이 사유리 일본은행(BOJ) 정책위원은 “국민 대부분이 가격 인상을 ‘불리한 것’으로 여긴다”며 “(소비자들이) 물가 상승률이 지나치다고 느낄 경우 소비자신뢰도가 나빠지고, 경제를 활성화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지난 2월 일본의 소비자신뢰지수는 38.3으로 지난 2011년 9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상당수의 경제 전문가들은 일본은행이 소비세율 인상 등 불안 요인을 잠재우기 위해 상반기 중으로 경기 부양책을 추가로 내놓을 것으로 기대한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 11일(현지시각)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물가 안정(목표)을 달성하기 어렵게 만드는 상황이 생길 경우, 통화 정책을 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