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與野)는 2012년 대통령 선거와 19대 총선 등에서 각종 정치 개혁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대부분이 이행을 위한 첫걸음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정치 개혁에 앞장선다"는 생색(生色)을 내려고 애당초 현실성 없는 약속을 내건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충분히 실현 가능한 공약인데도 선거 이후 마음이 바뀌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불가능한 공약 내걸고 개혁 생색

이번에 논란이 된 기초선거 불(不)공천 공약은 나올 때부터 여야 모두에서 "선거 때가 되면 결국 없던 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많았다. 별로 지킬 생각도 없이 생색만 내려 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공약이 한둘이 아니다.

2012년 7월 19대 국회 개원식에서 의원들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2012년 4월 총선 때 "의원 특권을 줄이겠다"며 '세비 30% 삭감' 등의 공약을 내걸었지만 실천한 건 거의 없다. 이후 12월 대선 때 약속했던 검찰 개혁, 대통령 권력 내려놓기 등의 공약도 정치권이 마음만 먹으면 곧바로 이행할 수 있지만 선거가 끝난 뒤에는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고 있다.

여야는 지난 대선에서 "국회의원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겠다"는 공약을 동시에 내걸었다. 하지만 이 공약은 헌법을 바꿔야 이행이 가능하다. 의원의 면책·불체포특권은 헌법 44조와 45조에 규정돼 있다. 사실 이 공약은 생색을 내려는 여야가 선거 때면 내걸어 온 '단골 공약'이다. 여야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시절인 2004년 총선에서도 이 공약을 공약집에 담았다. 여야는 선거 이후 "개헌이 이뤄지지 않아서…"라는 핑계만 댈 뿐 공약 이행을 위한 어떤 움직임도 보여주지 않았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정수를 축소하자"고 주장했다. "현재 300명인 국회의원 정수를 200명으로 줄이면서 비례대표 의석은 늘리자"는 등 구체적인 수치까지 등장했다. 의원 축소 주장은 처음에는 "정치 불신을 이용한 선동 정치"로 취급받았다. 하지만 대선에 임박해 정치 개혁 경쟁이 달아오르자 여야가 앞다퉈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여야에서 내부 검토도 이뤄졌다. 결국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현재 지역구 246석, 비례대표 54석인 의원 정수를 지역구 200석, 비례대표 100석으로 조정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정수 축소는 물론, 정수 조정 문제는 대선이 끝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국회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야당의 한 관계자는 "장단점을 면밀히 따져보고 장기간 논의해야 할 사안인데도 개혁 경쟁에 밀려 공약이 급조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새누리당의 지난 대선 정책 공약집에는 "부정부패 사유로 재보궐 선거가 실시될 경우 원인 제공자에게 선거비용을 부담토록 하겠다"는 공약이 있다. 잇따른 재보궐 선거로 국민 혈세가 낭비된다는 지적에 따라 만들어진 공약이다. 대선 이후 실제로 이 같은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올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국회 관계자들은 "처리가 난망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관계자는 "수십억원에 달하는 선거비용을 원인 제공자에게 전부 추징하겠다는 것부터 무리한 발상"이라며 "선거법 위반 사범에 대해 벌금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선거 끝난 뒤에는 "나 몰라라"

충분히 현실성이 있는 공약인데도 대선 이후 공약을 내건 쪽이 '나 몰라라' 하면서 유야무야된 공약도 적지 않다. 새누리당은 대선 당시 "총리의 정책 조정 기능을 강화하고 국무회의를 총리가 주재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또 "예산 인사 권한을 각 부(部) 장관에게 실질적으로 위임해 책임장관제를 확립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 뒤 현실은 딴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만기친람·깨알지시 리더십'이란 말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책임총리제나 책임장관제는 구두선일 뿐"이라고 정치권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덕망과 능력이 있으면 여야를 떠나 발탁하는 대탕평 인사를 추진하겠다'는 대선 공약도 있었지만, 야권 인사 중에 요직에 기용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의원 세비 30% 삭감' 약속도 마찬가지다.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의원 전원은 '의원 세비 30% 삭감안'에 서명했다. 새누리당도 당시 이한구 원내대표가 함께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대선이 지나고 국회가 의결한 2013년 국회의원의 세비는 2012년과 똑같은 1억3796만원이었다.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 확보를 위해 "검찰인사위원회에 실질적 권한을 부여하겠다"는 공약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검찰인사위원회가 의결은 하고 있지만, 실질적 권한은 여전히 갖고 있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공통된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