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세 거래소인 '프리포트(freeports)' 건설 바람이 여러 나라에서 불고 있다고 CNBC가 8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부자들이 탈세 수단으로 사들인 예술품을 보관하는 장소로 삼으면서 유치전이 벌어지고 있다.

프리포트란 본래 항구로 들어온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매기는 과정에서 물품을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창고다. 이 창고에 보관돼 있는 수입품은 무관세 상태가 된다. 최근 미술품 시장이 커지면서 일부 국가들은 아예 프리포트를 미술품 보관소로 만들어 창고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 스위스·싱가포르 등 예술품 유치 경쟁…고객 보안 최우선

첫 프리포트는 1980년대에 스위스 제네바에 건설됐다. 지금은 싱가포르, 모나코 등에도 프리포트가 세워졌다. 룩셈부르크와 중국도 프리포트 건설을 진행 중이다. 이 곳 정부들은 프리포트를 예술품 창고로 활용하는 기업들에 대해 무관세 특혜를 보장해줬다.

싱가포르 프리포트 내부 모습

미술품을 보유한 부자들과 딜러, 기업, 은행들은 조세 회피 목적으로 프리포트에 몰려들고 있다. 현재 세계 예술품 판매 시장 규모는 660억달러(약 68조7000억원)에 이른다. 지난 10년 사이 세배 이상 늘었다. 세계 부자들이 예술품을 대안 투자 자산으로 여긴 데 따른 결과다. 프리포트 수요가 넘쳐나면서 기존 프리포트는 대부분 과포화 상태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공간은 사전 판매로 팔려나갈 정도다.

미술 시장 분석 업체 아트택틱의 앤더슨 피터슨 연구원은 "미술품이 재산으로서 가치가 커지자 이 자산들을 보호할 수 있는 프리포트 서비스가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프리포트에는 007 영화를 연상시키는 보안 기술까지 장착돼 있다고 CNBC는 전했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레이저 센서와 인체 스캐너, 전자 자물쇠, 동작 탐지기, 생체 인식 식별 장치, 무장한 경비원 등을 갖췄다. 창고 내부 역시 최고급 보안 설비들로 꾸며졌다. 피카소의 그림부터 다이아몬드, 금, 유명 와인, 빈티지 자동차 등 수십억원이 넘는 귀중품들이 보관돼 있기 때문이다.

보관비만 한 달에 최소 수천만달러에 이른다. 스위스 프리포트의 경우 10㎡에 연간 2만2000스위스프랑(약 2600만원)의 임대료를 받고 있다고 독일 매체 슈피겔은 전했다. 예술품 가격에 따라 비용이 추가로 붙기도 한다. 일부 프리포트는 예술품 복구 서비스 등을 제공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프리포트는 운송 편의를 위해 공항 근처에 자리잡고 있다.

◆ 탈세 도구 비난 거세…각 국 너도나도 프리포트 건설 바람

하지만 이런 프리포트를 두고 탈세를 비롯한 불법 자금 세탁에 활용되고 있다는 비난이 나온다.

가령 크리스티 같은 대규모 미술품 경매 기업들은 프리포트 안에서 직거래 제도를 운용한다. 프리포트 내 미술품 거래에는 세금이 붙지 않는다는 엄청난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수입돼 프리포트에 저장되는 물품은 한번만 수입 관세를 지불하면 된다. 프리포트 내에서는 수십번 거래가 되더라도 세금이 추가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프리포트에 보관된 귀중품들은 프리포트 안에서 수십번 거래되며 부자들이 세금을 피해 부를 축척하는 용도로 쓰인다고 CNBC는 전했다.

싱가포르 프리포트 외부

프리포트 운영 기업들은 고객과 저장품의 기밀 보안을 최우선으로 한다. 예술품 범죄 사건을 조사하는 ARCA의 린다 알버트슨 대표는 "미술품이 프리포트에 보관된 동안 그 예술품의 가치, 소유권 등 모든 사항이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진다"고 했다.

스위스에서 프리포트를 운영하는 유로아시아그룹은 자신들의 역할은 건물을 관리하고 보안을 강화하는 일이지, 예술품이나 고객 정보를 기록하는 일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유로아시아가 소유한 싱가포르 프리포트의 토니 레이나드 회장은 "우리의 업무는 공간을 제공하는 일 뿐"이라며 "고객들의 이름과 작품명을 등록하긴 하지만, 구체적인 세부사항을 저장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프리포트가 불법 자금 세탁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일부 국가들은 아랑곳않는다. 최근 중국 국영 기업은 유로아시아와 합작해 프리포트를 건설 중이다. 중국은 베이징 국제공항 근처에 50억위안(약 8406억원)을 투자해 '베이징 문화 프리포트'를 건설하고 있다. 스위스 제네바의 프리포트도 국가가 지분의 80%를 소유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창이공항 주변에 '싱가포르 프리포트'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