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으로 꼽히는 칸다하르에 열린 선거 유세에서 검은 히잡(머리 가리개)을 쓴 후보가 연단에 섰다. 여성 부통령 후보 하비바 사라비(58·사진)였다. 그는 마이크를 잡고 "저를 뽑아준다면, 근거 없는 간통 혐의로 여성을 투석형에 처하는 악법을 철폐하겠다"며 연설했다. 그 순간 일부 남성들이 "여성이 왜 정치를 하려 하느냐"고 야유했다. 하지만 잠시 후 1000여명에 이르는 여성 지지자들이 사라비의 이름을 연호하면서 야유 소리를 뒤덮었다.

탈레반 집권(1996~2001년) 당시 아프가니스탄은 남성의 허락이 없으면 여성은 집 밖으로 외출조차 힘들었던 '인권 후진국'이었다. 하지만 5일(현지 시각)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에서는 사라비와 국회의원 출신인 사피아 시디키 등 여성 3명이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 총 11명의 대통령 후보 가운데 3명이 러닝메이트로 여성 후보를 선택한 것이다. 인권 변호사 와즈흐마 프로그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여성들 사이에서 '더 이상 무시당하고 살 순 없다'라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들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정치인의 숫자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여성 후보 중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사라비는 2005년 현지 최초의 여성 주지사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탈레반의 위협에 맞서 여성의 교육권, 명예 살인과 같은 종교 관습법 폐지에 앞장섰다. 작년 7월엔 '아시아의 노벨평화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받았다. 그는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살해 위협을 수없이 당했지만,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도 정치적 저력을 갖고 있다는 걸 세계에 알리기 위해 출마했다"고 말했다.

2001년 탈레반 정권이 축출된 이후,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상전벽해(桑田碧海)에 가까운 변화를 겪었다. 여성의 초등학교 진학률은 2001년 40%에서 2010년 80%로 두 배로 올랐다. 여성들은 경찰·군에 취업할 기회를 얻었고, 지방의회 전체 의석의 20%는 여성에게 할당하는 법률이 통과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