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기사나 인터넷을 보고 쓴 건 하나도 없어요. 전부 두세 번씩 다니며 동네 사람들에게 그들만 아는 등산로와 맛집, 숙소를 물었죠. 음식은 먹어 보고, 숙소는 직접 자 보고요."
36년 동안 등산하며 한국의 1500개 주요 산을 모두 다닌 등산 작가 신명호(74)씨가 최근 책 '한국 1000산(산행 안내)'을 냈다. 해발 500m 이상인 산이 국내에 1500개 정도 있는데, 이 가운데 일반인이 오를 수 있는 1000개를 추렸다. 분량이 1000쪽이 넘고, 지도도 1000개나 있는데 모두 직접 그렸다. 이 책을 위한 그의 산행 횟수는 총 2300회, 걸은 거리는 지구 반 바퀴인 2만㎞에 이른다. 그가 가본 길은 빨간 선, 가보지 않은 등산로는 검은 선으로 표시했다.
신씨는 건강이 좋지 않던 1978년 지인 권유로 등산을 시작했다. "서울 동대문에서 실(絲) 파는 가게를 하며 만성기관지염과 위장병, 허리통을 달고 살았어요." 그런데 아침에는 뒷산에, 주말이면 근교 산에 다니면서 기침이 그쳤다. 3년쯤 지나자 허리통과 위장병도 없어졌다. 더 열심히 산에 다녔고, 그러다 산 자체가 좋아졌다. 그는 "74세인데 아픈 데가 없는 것도 산에 다닌 덕분"이라며 "급하던 성격도 산을 닮아가선지 온화해졌다"고 했다.
그러다가 기록하기 시작했다. 지나갔던 등산로는 물론, 다녀온 산까지 자꾸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주로 혼자 다니며 출발·도착과 구간별 소요 시간, 특색 있는 지형지물, 험난한 곳 등을 꼼꼼히 적었다. 한참 지나자 주변에서 "책을 쓰라"고 권했고, 그는 "책 내려고 기록하는 것 아니다"며 마다했다. 친구들은 "자네가 아니라 등산인을 위한 책"이라고 했다. 5년을 버티다가 2008년 '한국 700명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7권을 냈다.
2009년 그는 가게를 아들에게 물려준 뒤 주중·주말 없이 산에 오르며 전업 '등산 작가'가 됐다. '첩첩산중 오지의 명산' '수도권 전철 타고 가는 산' 같은 책도 이때 냈다. "꾸미지 않고 원래 생김새 그대로인 오지(奧地)의 산이 갈수록 더 좋아져요. 자연의 이치도 배우게 되고요."
그토록 산에 올랐는데 위험한 순간이 없었을 리 없다. 1년가량 산을 타지 않은 시기도 있다. 포천 운악산에서 선배가 바위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었을 때가 그랬다. "너무 괴로워 산행을 중지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결인가 다시 타고 있더라고요." 지리산에서 강원도 진부령까지 백두대간을 30일 만에 종주할 때는 설악산 미시령 부근에서 길을 잃어 죽을 뻔했다. "두 시간을 헤맸는데 비가 많이 와 앞이 안 보여요. 여름인데도 덜덜 떨리게 추운데 어디로 가야 옳은지 알 수 없었죠.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어요. 다행히 짐승 발자국을 발견해 길을 찾았습니다. 그런데요, 한 달 뒤 거기 다시 가서 길 표시를 해놓고 왔어요. 하하."